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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는 '라칭거'와 달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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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으로 불리던 과거 성향을 그대로 간직한다면, 그는 요한 바오로 2세보다 훨씬 더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인물이다. 요한 바오로는 , 사람들이 그가 교황에 뽑히기 전까지 그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역사적인 사건을 두루 겪으면서 요한 바오로가 보여준 선택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베네딕토는 그와는 반대로, 기념비적이고 전혀 모호하지 않은 그의 신학 저서로 인해 아주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요제프 라칭거보다 더 훌륭한 성서 해석학자가 될 수 없었다.

그의 믿음은 반석처럼 견고하다. 그것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중심에 바윗돌처럼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과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신자들이나 불신자들은 그의 주장에 찬성하거나, 회피하거나, 반박하거나,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의 주장 중 그 어느 것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베네딕토와 함께 있든지, 베네틱토를 반대하든지, 그도 아니면 베네딕토를 무시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베네딕토는 이도저도 아닌 미지근한 사람들과 비판자들에게는 그들이 앉을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베네딕토가 하려는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한 말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라칭거는 두 개의 역사적 사건에 의해 결정됐다는 말이다. 완전히 별개의 사건이지만 라칭거는 두 사건이 동일한 전체주의적 위협 요소를 가진 것으로 해석했다. 두 사건은 나치즘과 1968년 독일에서 일어난 학생 폭동이다.

요한 바오로 2세와는 반대로, 그는 공산주의를 구경꾼으로서 간접적으로만 체험했다. 하지만 라칭거에 따르면 마르크시즘은 자신이 경험한 나치즘과 동일한 전체주의적 현상들을 갖추고 있다.

나치즘에 대한 베네딕토의 공포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뿐더러 더 이상 논할 필요조차 없다. 반대로, 학생 폭동에 대한 라칭거의 공포는-당시 튀빙겐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던 라칭거는 학생 폭동의 희생자였다-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학생 폭동에서 전체주의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닌가 말이다. 사실 당시 독일에서는 프랑스와 달리 학생운동이 격렬했다. 테러를 감행하는 집단도 있었다. 라칭거는 학생들의 폭동 속에서 나치의 청년 조직 '히틀러 유겐트'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으로 생각했다.

두 경우 모두 젊은이들의 도덕적 뿌리가 없다는 이유로 라칭거에게는 야만적인 것으로 보였다. 도덕성이 사라지면 그 빈자리에 이데올로기가 들어선다. 이는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일종의 물리적 법칙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만성과 이데올로기, 전체주의적 폭력은 라칭거에 따르면 도덕적 재무장을 통해서만 싸우고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덕은 신에게만 존재한다.

요제프 라칭거는 인본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세속적이고 철학적인 이성에 의해 도덕성을 바로세울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도덕성이란 그것이 인간의 속성 중 하나라고 할지라도 상대적인 개념, 즉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방신학과 비종교적인 인본주의, 성직 개념의 변화, 그리고 현대의 갖가지 풍속에 대해 라칭거가 벌이는 싸움은 공표된 그의 신념을 통해 명확하게 잘 드러나 있다.

그 신념은 '절대성 없는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이 없는 절대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단계까지는 철학과 역사 토론의 영역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거나 무신론자라 하더라도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면 오직 신앙만이 명령한다. 하느님 단 한 분만 존재하며, 그 분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보낸 메시아다. 이 부분은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과 협상을 통해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배제된다. 하느님이 이미 사람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이 기록돼 있는 성경을 다시 읽기만 하면 된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읽고 또 다시 읽는 것, 이것이 신자들에게 알파요 오메가이며 신학이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상대주의적인 관점이 허용돼야 한다. 라칭거의 근본주의가 우리 시대를 포용해야 한다. 유대교.개신교.이슬람교.힌두교 등은 모두 우리 시대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 또한 너나 할 것 없이 텍스트(말씀)로 돌아가자는 열기에 빠져 있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식의 도덕적 상대주의에 계시종교들은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이 씌어 있다"라는 말로 대꾸한다. 읽긴 읽었지만 어설프게 읽은 사람들을, 요제프 라칭거의 신학 저서들은 그가 옳다고 평가하는 길로 인도한다.

베네딕토가 (과거의) 라칭거를 닮는다면 앞으로 가톨릭 신자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양의 무리들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인도할 때보다 더 뿔뿔이 흩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베네딕토가 많은 가톨릭 신자의 미지근한 믿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베네딕토에 따르면 교회가 세상과 영합하지 않고 교회로 남아 있기 위해 그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베네딕토와 다른 종교 간에 나눈 대화는 가톨릭 교회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상, 그만큼 더 형식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네딕토는 세상은 두 요소로 나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에는 가톨릭 교회와 계시, 그리스도의 강생,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도덕적 요구, 모든 일탈 행위와 육체.정신.언어적 유혹에 대한 부정이 자리잡을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무신론자, 사이비 신자, 그리고 이방인들이 자리잡을 것이다. 이들은 세속을 받아들이는 부류들이다.

그들은 신이 없는 도덕을 추구하거나, 선하지 않은 잡신들의 도덕을 추구하며 삶을 살아나갈 것이다. 베네딕토가 주장하는 세상은 가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권하는 선택의 명료성으로 인해 그 세상은 아주 흥미로울 것으로 보인다.

정리=박경덕 파리 특파원

*** 기 소르망은

▶ 1944년 프랑스 출생

▶ 64년 파리정치학연구소 박사

▶ 69년 국립행정학교 졸업

▶ 1970~2000년 파리정치학 연구소 교수

▶ 르 피가로 등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약

▶ 현재 파리 근교 불로뉴-발랑쿠르시 부시장

▶ '최소국가' 등 스테디셀러 20여권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