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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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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능력이 비슷하다면 해내겠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런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심리학에선 '성취 욕구' 또는 '동기'라고 한다.

행동 심리학의 권위자인 미국의 데이비드 매클렐런드(1917~98)는 성취 욕구의 강약이 업무나 학습에 큰 영향을 준다고 봤다. 무엇인가 성취하려는 욕구가 강하면 목표 달성에 성공할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그런데 성취욕이 너무 강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매클렐런드는 이를 미국 해군 함정의 수병들을 관찰하면서 발견했다. 그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신속하게 출항준비를 하는 함정과 그렇지 못한 함정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지 지켜봤다. 수병들은 조직적인 훈련으로 고른 수준의 기술과 숙련도를 보이고 있었다.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는 강한 성취욕도 비슷했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 경쟁하다 보니 순서를 어기고 장비를 쓱싹해오거나 훔쳐오는 등 정규 절차를 무시하는 수병이 나타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런 수병들이 유능하다고 평가받았다. 또 그들의 함정이 다른 함정보다 출항준비를 더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신사적 행동이나 교활한 협상 기술이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됐던 것이다. 군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현상은 요즘 우리의 고등학교에서도 나타난다. 친구에게 노트를 안 빌려주는 것은 물론 친구의 노트를 몰래 훔치거나 찢는 일도 있다고 한다. 남을 앞지르기 위해선 치사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다. 학생들은 내신 위주의 대입 때문에 친구들이 모두 경쟁자가 됐다고 말한다.

많은 학생이 무조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학부모들은 더 하다. 이를 강한 성취욕이라고 하든, 병적 집착이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는 수병들과 비슷하다.

매클렐런드는 이를'전형적인 업무 수행과는 완연히 구분되는 인간적 특징'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특징이 있는 한 개개인에게 점잖은 자기통제를 요구하기는 어렵다. 교육당국이 삭막한 경쟁을 부추겨 놓고는 뒤늦게 불안해하지 말라, 걱정 말라고 달랜다고 효과가 있을까. 문제를 일으킨 건 아이들이 아니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