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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 '전업 화가'의 길 함께 걷는 오치균·이명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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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오치균(右).이명순씨 부부가 자신들의 그림이 걸려 있는 거실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부부는 각기 열성적인 컬렉터(수집가)를 몰고 다니는 걸로 화단에서 유명하다. 김상선 기자

동병상련. 마흔아홉살 동갑내기 오치균.이명순씨 부부를 묘사하는 데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을 듯하다. 화가, 그것도 교수 등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1년 365일 그림과 치열하게 씨름하는, 이른바 '전업 화가'의 길을 함께 걷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국내 미술계 풍토에서 그림만 그려 먹고 사는 전업 화가는, 특히 부부가 모두 그렇기는 드문 일이다.

"그래도 저는 그림 그리는 틈틈이 딸아이(진이)를 돌보고 살림도 꾸리니까 좀 낫죠. 남편은 외출도 안 하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1년에 2~3일을 빼곤 매일 작업실(경기도 광주)로 출근해 혼자 지내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만 마주하고 사는데 그림이 잘 안 풀릴 땐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지…." 이씨의 말에 오씨는 "저 사람이 그래서 얼마 전엔 나더러 '밤에 어디 나가서 술이라도 마시고 오라'며 등을 떠민 적도 있다"며 웃었다.

하지만 부부가 처음부터 서로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보듬고 산 것은 아니다.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섬세한 창작에 몰두해야 하는 직업인 데다 부부가 각자 작업실을 갖기 전엔 한 집안에서 온종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다 보니 부닥치는 경우가 잦았다.

"참 많이 싸웠죠.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같이 사느냐'고 할 정도로요. 그런데 4년쯤 전인가 어느날 내게 막 화를 내는 남편을 보다 문득 '이 사람이 너무 힘들어 자기를 도와달라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이씨)

"그날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는 '내 편'을 얻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내 절망과 고민을 다 헤아려줄 수 있었겠습니까."(오씨)

사회와는 어느 정도 절연한 채 살아가는 부부이다 보니 둘이선 노상 붙어다니게 된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부부를 뽑으라면 바로 우리일 것"이라고 오씨는 자랑스레 말했다.

"남편이 주로 풍경을 그리니까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거든요. 아무데나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를 하는데 혼자서는 힘드니까 제가 운전사 노릇을 해주는 거죠."(이씨)

각기 서울대 미대와 덕성여대 미대를 졸업한 뒤 친구의 소개로 만나 결혼한 두 사람은 1986년 함께 뉴욕(브루클린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다. 같이 공부하고 같은 경험을 한지라 종종 "화풍이 비슷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는 두 사람은 서로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한다. 오씨가 "아마 세상에서 이 사람 그림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나일 것"이라며 치켜세우자, 이씨는 "남편은 음악으로 치자면'절대 음감'을 타고났다. 어떤 상황도 정확히 끄집어 그려낸다"고 화답했다.

신예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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