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파파조이 그리스 외무장관 3대이은 한국인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20일 밤 11시30분. 예정보다 길어진 청와대 만찬을 마치고 강남의 한 음식점에 도착한 엘리사베트 파파조이(56)그리스 외무장관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자신을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던 한 초로(初老)의 한국인 남자에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분홍색 장미 두 송이를 그의 손에 건네고는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이를 지켜보던 그리스 대사관 직원들은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김창식(金昌植.64)씨와 파파조이 장관의 인연은 3대 위로 올라간다.

파파조이 장관의 선친은 한국전 휴전 직후 당시 그리스군 사령관으로 유엔사에 소속됐던 알렉산더 파파조이스 장군(당시 중령.1994년 작고).

1916년 제2차 발칸전쟁에서 부모님과 형제를 잃고 고아가 된 파파조이스 장군은 딱한 사정을 가엾이 여긴 당시 그리스군 니콜라스 플라스티라스 장군의 품에서 자랐다.

그리고 50년 한국전이 발생하자 당시 그리스 총리로 재임하던 플라스티라스는 유엔군 파견을 강력 주장했고, '양아들' 파파조이스를 55년 한국지원 사령관으로 한국에 보냈다.

한편 金씨는 당시 서울 정동의 그리스 정교회 신부이던 부친을 전쟁에서 잃고 혼돈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50년 7월 당시 중학생이던 자신의 눈앞에서 아버지는 북한군에 끌려갔다.

이후 그리스 정교회를 찾은 파파조이스 사령관은 金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나도 피붙이 하

나 없는 고아로 자랐다. 이제 내가 너의 아버지이고, 나의 딸들이 네 동생들이다" 며 헌신적인 도움을 줬다.

주말마다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한편 불쌍한 고아들을 위해 '아테네' 와 '지온' 이라는 이름의 고아원도 설립했다.

이후 金씨는 파파조이스 사령관의 도움으로 외무부 국비장학생 자격으로 아테네대에 진학했고 이후 미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마쳤다.

金씨는 "그리스는 나에게 제2의 삶을 살게 해 준 나라다. 내 조국 한국과 그리스에 동시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며 한국으로 돌아왔고, 26년간 주한 그리스 대사관에서 명예영사로 재직하다 수년 전 은퇴했다.

파파조이 장관도 3개 부처 장관을 거치며 승승장구, 현재는 유력한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인물로 우뚝 섰다.

선친이 항상 '제2의 조국' 이라고 부르던 한국을 이번에 정상 대리 자격으로 방문한 파파조이 장관의 감회는 남다르다.

양할아버지는 유엔에서 북한에 대한 강력 대응을 앞장서 호소했고 부친은 북한에 총부리를 겨누던 사령관이었지만, 자신은 이제 유럽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일선에서 지휘하는 최고 책임자가 됐기 때문이다.

"처음 찾는 한국 하늘 아래서 누구보다 친오빠같은 金씨를 만나고 싶었다" 는 그녀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며 조만간 유럽연합(EU)과 발맞춰 행동에 나설 것" 이라고 했다. 파파조이 장관의 이야기에 金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두 사람의 선친은 모두 북한 때문에 눈물과 땀을 흘렸던 인연이 있지요. 하지만 50년이라는 짧지 않은 회한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난 북을 용서하고 파파조이 장관은 세계평화를 위해 북한과 악수를 나눌 겁니다."

김현기.박현영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