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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복구, ‘수전노’ 오명 벗을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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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밤하늘은 서럽도록 아름다웠다. 남쪽 하늘 오리온 자리 주변엔 수도 없이 많은 별이 반짝거렸다. 그렇게 많은 별을 본 게 언제였던가. 한데 밤마다 별을 헤아리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곳은 한 나라의 수도였다.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았다는 얘기다.

해만 넘어가면 포르토프랭스는 암흑천지가 됐다. 지진 때문만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전력 공급망 자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이티 전력청이란 관청이 있긴 하다. 그러나 아이티에서 소비하는 전력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특히 가정 소비량은 아무도 모른다. 도전(盜電)이 일상화돼서다. 생산도 불안정하다. 발전량의 절반은 송·배전 도중 줄줄 샌다.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자면 얼마나 생산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쓰는지 알아야 한다. 둘 다 모르니 공급이 불안정한 건 당연하다. 대통령궁조차 정전(停電)되기 일쑤였으니 오죽했으랴. 고급 호텔이나 부유층은 아예 자가(自家) 발전기를 쓴다.

그런데 자가 발전기를 돌리자면 휘발유나 디젤유를 때야 한다. 아이티에선 기름이 한 방울도 안 나온다. 다 수입해오는 거다. 기름값이 비싼 건 둘째 치고 구하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런 기름을 때서 생산하는 전기니 얼마나 귀하랴. 가정에서야 언감생심(焉敢生心)인 건 당연하다. 그런데 공단은 이야기가 다르다. 전기를 안정적으로 쓸 수 없으면 기계를 돌리기 어렵다. 아이티에 제대로 된 산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건비가 아무리 싸다 한들 전기 없는 곳에 공장 지을 기업이 있었겠나 말이다. 기업의 싹이 틀 여지가 없었으니 80%가 넘는 실업률도 무리가 아니었다.

지진의 충격이 가라앉자 국제사회는 아이티 복구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25일 캐나다에선 아이티 지원국 회의가 열렸다. 각국 정부가 약속한 구호자금도 12억 달러가 넘는다. 어쩌면 아이티는 이번 기회에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를 맞을지도 모른다. 아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시급한 게 전기가 아닐까. 전기가 있어야 복구도 할 수 있고 새집도 지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만들어줄 기업을 유치할 수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구두쇠 소리를 듣고 있다. 가난한 나라를 돕는 데 인색해서다. 그렇다면 이번이 수전노(守錢奴)란 오명을 씻을 좋은 기회다. 전기에 관한 한 한국은 선진국 못지않은 기술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현지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이 아이티 전력망에 관한 기초조사까지 마쳐놓았다. 마침 한국전력 자회사 동서발전과 현지 교민 기업 ESD가 포르토프랭스에 3만㎾짜리 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 지원을 보탠다면 아이티 전력망 복구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게다. 전기와 함께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경제 발전을 이뤄낸 경험까지 얹어준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터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 (포르토프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