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증인 채택 부결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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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17일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 국회 재경위에서 한나라당은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 회장,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장관을 증인으로 부르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정작 표결에 부친 결과 한나라당 의원이 불참해 부결됐다.

때문에 "李총재는 새빨간 얼굴로 불만을 표시했다" 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당연히 '봐준 게 아니냐, 석연치 않다' 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기가 막히다. 李총재의 당 장악력에 문제가 생겼다" 는 반응 속에, 자민련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밀약설을 제기했다.

◇ "어처구니 없다" =李총재는 재경위 상황을 보고받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고 측근들이 전했다.

재경위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민주당보다 한명 더 많고, 자민련 이완구(李完九)의원도 한나라당을 밀었다.

위원장도 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의원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표결에서 이길 수 있는 환경인데도, 한나라당 손학규(孫鶴圭)의원의 불참으로 증인채택에 실패한 것.

李총재는 崔위원장에게 "표결하려면 야무지게 처리하고, 자신없으면 미결로 둔 채 정치공세를 펴야지 왜 일을 그르쳤냐. 자민련까지 도와줬는데 부결된 게 말이 되냐" 고 추궁했다.

그러면서 孫의원의 불참 이유를 캐물었다. 孫의원은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모 신문의 창간기념일에 참석했고, 표결이 시작돼 회의장에 돌아오려 했으나 교통혼잡으로 늦었다" 고 해명했다.

하지만 재경위 주변에선 "孫의원이 표결을 50분 정도 앞둔 시간에 나간다고 해서 적극 만류했다. 현대그룹을 의식한 것 같다" 고 고개를 저었다.

崔위원장은 의원들을 교체 투입할 수 있는 사.보임(辭.補任)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부결될 것으로 보여 그랬다" 고 답했다. 이완구 의원의 한나라당 지원을 믿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정창화(鄭昌和)총무는 "정몽헌 회장 등이 다른 상임위에서 이미 증인으로 채택돼 안이하게 판단한 것 같다" 고 말했다.

◇ "골목에서 강아지가 짖지만"=자민련 김종호(金宗鎬)총재권한대행은 17일 "이회창 총재가 아침에는 공적자금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더니, 밤에는 총무단이 국회 증인채택을 의도적으로 무산시켰다" 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李총재는 영천시장 보선 지원현장에서 "둥근 달이 만공에 떴을 때 골목에선 강아지가 짖지만 달은 환하다" 고 맞받았다. 李총재는 그러면서 "경제가 관건이다.

지금이라도 증인채택이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라" 고 지시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시큰둥한 분위기고 민주당측은 "우리가 소수지만 뭉치면 한나라당이 무너지더라" 고 자신했다.

최상연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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