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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화백 3년만에 국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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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캔버스 마포 위로 수백, 수천개의 물방울이 돋아있다. 빛을 받아서 더욱 투명하게 반짝이는 물방울, 물방울…. 그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리 속은 온통 기억 어디엔가 자리하고 있는 물방울들로 채워진다. 잡다한 생각들은 저만치로 물러가고 관객은 잠시 자신을 잊는다.

29년째 물방울만 그리고 있는 재불(在佛)화가 김창열(71)씨가 개인전을 연다. 국내외 통산 73번째다. 1997년 이후 3년만의 본격적인 국내전시다.

오늘(1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1천호 안팎의 대작 3점을 포함, 근작 40여점이 걸린다. 무쇠 상자안에 유리구슬을 놓은, 오브제 작품 2점도 있다.

서울대 미대를 나와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판화를 공부한 김씨. 65년 고국을 떠난 뒤 런던과 뉴욕을 거쳐 69년부터 파리에서 정착,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72년 부터. '희한하고 혁명적인 아이디어' 를 찾기위해 방황하다가 좌절과 포기를 겪은 후였다.

" '새로운 세계가 밖에서 그저 오는 것이 아니구나. 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보는 길밖에 없겠다' 고 정리했을 때였습니다. 어느날 캔버스에 뿌려본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 길이 정해진 거지요" 그리고 물방울은 그의 평생 화두(話頭)가 됐다.

초기에는 신문지위에 에어브러시를 뿌려 붓자국 없이 정교하게 그렸다. 80년대에는 거친 붓자국을 남기는 신표현주의 기법과 민화기법을 응용해 깊이를 더했다. 90년대부터는 배경에 천자문이 등장했다.

이번 전시에 보이는 근작들도 이런 형태다. 하지만 약간의 새로움은 더했다. 순수한 마포 캔버스위에 창문에 흘러내리는 빗물같은 형상.

그는 파리 중심가의 아파트에서 프랑스인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살고있다. 일년의 절반씩을 아파트 아래층과 프랑스 남부 니스 인근에 있는 아틀리에를 오가며 작업한다.

매년 여름에는 한국에 2개월 안팎씩 머무르며 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 일한다. 가족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다. 2~3일에 한번꼴로 등산과 수영을 하지만 기력은 전만 못하다. 심장박동이 불규칙한 부정맥을 5년째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해마다 3~4차례의 개인전을 대부분 외국에서 열고있다. 그의 '물방울' 은 이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그동안 그린 물방물 작품만 2천여점. 그의 그림은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를 비롯, 독일 보쿰 미술관, 미국 워싱턴 허션미술관.일본 후쿠오카 미술관 등 세계 각국의 저명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지난 3월 한불 정상회담이 열린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의 만찬장에는 퐁피두 센터에 소장된 1천호 크기의 물방울 작품이 내걸려 양국 우호증진의 가교 역할을 했다.

"농부가 밭을 갈듯, 스님이 염불 하듯, 어린아이가 물장구를 치듯" . 그는 그렇게 그림을 그린다.

"인간사의 모든 희노애락을 물방울에 녹여 없앤다" 는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그 단순한 물방울 속에서 인간사의 희노애락을 찾야할 듯하다.

그는 "건강 때문에 앞으로 1천호 이상의 대작은 못그릴 것 같다" 며 아쉬워했다.

모두의 아쉬움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이번엔 10년동안 변함이 없던 그림값을 조금 올릴 계획이란다.

"예전에 내 작품을 산 분들을 위해." 02-734-6111.

조현욱 기자

<김창열은…>

◇ 약력

▶1929 서울출생

▶48~5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수학

▶66~68 뉴욕 아트스튜던트 리그에서 판화전공

▶69년 프랑스 파리 정착

◇ 주요 그룹전

▶2000 '시카고 아트페어' 미국 시카고

▶97 '메이드 인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

▶92 '자연과 더불어' 영국 테이트 갤러리

▶85 '휴먼 도큐먼트' 일본 동경화랑

▶81 '화상의 눈' 미국 롱아일랜드 미술관

▶80 '아시아 미술전' 일본 후쿠오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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