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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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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옛 선비들의 묘비명을 모은 전시회에 갔다가 특이한 내용을 봤다. “…바둑을 좋아했으나 평생 내기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묘비명은 망자의 행적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행적을 적시함으로써 그의 고결한 인품을 후세에 알린다. 놀라운 일이다. 이 묘비명은 내기바둑을 두지 않은 것을 최고의 행적으로 꼽고 있다. 화투 놀이, 즉 고스톱은 내기 없이는 힘든 게임이다. 바둑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점심 내기라도 해야 구경꾼도 생기고 힘도 난다. 묘비명의 선비는 평생 바둑을 두면서 내기를 하지 않았으니 짐작하건대 내기 자체를 매우 싫어한 사람이었을 게다.

나는 내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가슴이 뜨끔했다. 바둑이든 골프든 당구든 조금은 걸어야 맛을 느낀다. 모든 놀이는 뭔가 걸려 있어야 규칙이 지켜진다. 좀 더 진지해지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한데 묘비명의 선비는 내기 없는 심심한 상황을 신념으로 견뎌냈다. 한두 번이 아니라 ‘평생’ 그렇게 했다.

조훈현 9단은 중학생이던 일본 수업 시절 선배 프로들의 권유에 못 이겨 100엔짜리 내기바둑을 두어 6연승한다. 그 소식을 들은 스승 세고에 9단은 대로해 훈현을 집에서 쫓아낸다. 훈현은 중국집에서 접시를 닦으며 근신하다 용서를 받고 돌아간다. 스승이 대로한 것은 내기에 맛 들이면 바둑에 잡티가 끼고 품격이 떨어져 대가가 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조9단의 스승과 묘비명의 선비는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평생 온갖 내기를 즐기면서도 최고가 된 조9단에게 그때 얘기를 물으면 그냥 웃는다. 그 시절은 그랬다. 선생님은 그랬다는 식이다.

고려가요 ‘예성강곡’은 내기바둑으로 아내를 잃은 ‘남편의 노래’와 남편을 원망하는 ‘아내의 노래’ 두 편으로 되어 있다. 송나라 상인 하두강은 바둑의 고수였다. 그는 처음엔 계속 바둑을 져 주며 남편을 점점 큰 내기로 유인한 끝에 그의 아내인 절세미인을 손에 넣는다. 가사가 전해지지 않는 게 애석하지만 내기에 빠져 파탄으로 가는 전형적 스토리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스토리를 잘 보면 남편이란 사람은 내기바둑이 아닌 ‘치수 사기’에 걸린 것이다. 현대의 재판정에서도 이런 케이스는 도박죄가 아닌 사기죄로 처벌받는다.

사실 모든 내기는 이처럼 추해질 수 있다. 그러니 고결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예 가까이하지 않는 게 맞다. 내기는 이길 때도 있지만 질 때도 많다. 그러니 패배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 역시 가까이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애써 유지되는 고결함은 곁에서 보기에도 너무 힘들고 인생은-조훈현 9단처럼 제아무리 이기고 또 이긴 인생이라도-패배로 가득 차 있다. 얼마 전 바둑사를 연구하는 이청씨가 정약용 선생의 바둑 시 한 편을 찾아 보내줬다. 선생의 시는 마지막에 이런 구절로 끝난다. “지나가는 이 붙들어 놓고 내기바둑을 한판 둔다.”

왜 하필 내기바둑일까 싶지만 스스로 낮아진 모습이 한결 친근하다. 선생은 무슨 내기를 걸었을까. 노래 부르기? 막걸리 한잔? 누구보다 좋은 뜻을 지니고 누구보다 고결하게 살았던 선생의 쓰디쓴 회포가 오히려 이 대목에서 절절이 묻어난다.

박치문 바둑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