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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아 치료법 확 바꿔 440g으로 태어난 아기도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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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뱃속을 이런저런 사연으로 미리 나온 ‘엄지 공주, 엄지 왕자들’. 하지만 세상의 환경은 이 작은 아이들이 생존하기엔 너무나도 적대적이다. 깨끗하고 따뜻한 물 위(양수)를 떠다니며 탯줄을 통해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던 태아는 바깥 세상을 보는 순간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차고 건조한 데다 균도 득실거리는 공기를 마셔야 한다. 영양을 스스로 섭취하는 일은 이보다 더 힘들다. 최첨단 의술과 초인적인 모성애를 접목시켜 어머니 자궁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해줘야지만 살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신생아학 박원순 교수는 생존 한계를 넘은 미숙아 치료를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의사다.

‘평생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진로를 앞두고 1주일간 고민했던 그는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란 결론에 도달했다. 서울대 의대 본과 3학년 시절, 소아과 실습 시간에 인큐베이터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미숙아에게 시선을 빼앗긴 그는 미숙아 치료의 아버지가 되기로 일찌감치 마음을 정했다.

“당시만 해도 인큐베이터에 있던 미숙아의 몸무게가 1.5㎏은 됐어요. 지금 보면 대단히 큰 아기들이죠. 하지만 그땐 평생 본 적이 없는 작은 아이들의 투병 모습이 여간 안타깝지 않았어요.” (박 교수)

박 교수가 미숙아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89년 서울대병원에서 신생아학 전임의로 근무하면서부터다.

“전임의 시절만 해도 1000g 미만의 작은 아기를 살리는 일조차 힘들었습니다. 어린 생명이 꺼져갈 때면 ‘왜 못 살렸던 걸까?’란 자괴심이 들었습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인큐베이터 내부 습도, 수액과 전해질 교정 등의 간단한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박 교수의 눈빛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미숙아 생존의 가장 큰 걸림돌은 폐 미숙으로 인한 호흡 부전이다. 34주 이전엔 폐포의 탄력이 떨어져 가스 교환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인데 폐가 찌부러지는 무기(無氣)폐가 초래된다. 다행히 1990년에 들어서면서 국내에서도 서팩턴트(표면활성제)란 물질이 도입돼 이 문제는 해결됐다.

95년, 박 교수가 국내 최초로 도입한 산화질소 치료법은 폐동맥 고혈압 치료 성적을 놀랄 만큼 진전시켰다. 박 교수는 “이 치료법이 도입되면서 70~80%에 달했던 폐동맥 고혈압 사망률은 20~30%로 급감했다”고 밝힌다. 이즈음 1분에 900회까지 진동해 폐 손상을 줄이는 인공호흡기도 도입됐다. 박 교수는 2007년에도 혈액을 몸 밖으로 순환시키는 체외 순환 치료법을 도입해 심각한 폐동맥 고혈압 아기를 살렸다.

국내 미숙아 치료 성적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큰 획을 그은 박 교수는 ‘인큐베이터 습도를 100%로 유지시켜 양수와 비슷한 환경 조성하기’ ‘검사·항생제 사용, 아기 만지기 등의 횟수를 최소로 줄이기’ ‘첫날부터 모유 수유 시키기’ 등의 치료 지침을 꾸준히 세워나갔다.

그 결과 2년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생존 한계선으로 정한 ‘임신 기간 23주, 체중 500g(이후에 폐와 장이 형성됨)’에도 못 미치는 22주 3일(440g) 만에 태어난 극초미숙아(아영)의 생명을 극적으로 구했다. 지금 아영이는 건강하고 예쁜 두 돌배기 아기로 성장했다.

“작은 아기를 살린다는 사실은 그보다 큰 아기를 수월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존율은 높아지고 후유증은 줄어들었다는 뜻이죠. 실제 1000g 미만 아기의 생존율이 60%였던 90년대엔 치료 후 생존한 아이의 20%에서 뇌성마비 후유증이 생겼어요. 하지만 생존율이 75%로 높아진 2000년대 초엔 8%로 줄었습니다.”

박 교수가 담당하는 신생아 집중치료실의 성적을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임신 주수 24~25주(600~700g)의 신생아는 85%, 23~24주(500~600g)는 70%, 22~23주(400~500g) 아기는 40%의 생존율을 기록한다.

그는 미숙아 치료 연구에도 열심이다. 최근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을 동물실험을 통해 성공했고, 올해 말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연구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요즘 미숙아 부모들의 인식도 바뀌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살아도 건강하게 크긴 힘들지 않느냐?’며 치료에 회의적이던 부모들이 건강한 초등학생으로 자란 아이를 보면서 ‘큰일 낼 생각을 했었다’고 말합니다. 미숙아 치료법은 지난 10~2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했습니다. 아무리 작게 태어난 아기라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신인섭 기자

박원순 교수 프로필 

▶1957년생

▶1982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82~1986년: 서울대병원 인턴, 소아과 전공의

▶1992년: 서울대 대학원 의학박사 학위 취득

▶1989~1990년: 서울대병원 신생아학 전임의

▶1990~1992년: 차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과장

▶1992~1994년: 미국 Southern University 신생아학 및 감염학 연수

▶1994년~현재: 삼성서울병원 신생아학 교수

▶논문: 2009년 SCI 논문인 ‘Cell Transplantation’에 실린 ‘Human umbilical cord derived mesenchymal stem cells attenuate hyperoxia-induced lung injury in neonatal rats’를 비롯해 125편의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 발표(SCI 논문 49편, 국내 학술지 76편)


이윤성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365일 긴장 풀지 않고 아이들 보살펴요

“인간 생명에 대한 경외심 없이 미숙아 생존을 위해 혼신을 다 바치기란 불가능합니다. 미숙아 치료, 특히 미숙아 집중치료실에 입원한 어리디 어린 생명을 구하기 위해선 하루 24시간, 1주일에 7일간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풀 수가 없어요. 수시로 발생하는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숙아 치료 성적은 선진 의료의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치료 성적이 훌륭한 나라는 모두 인권을 중요시하는 선진국입니다. 우리나라도 보세요.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 정도였던 20년 전만 해도 1㎏ 미만의 미숙아를 살리는 일이 흔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2만 달러 시대인 지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생존 한계로 정한 임신 기간 23주, 체중 500g에도 도달하지 못한 미숙아를 살리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의료 수준이 20년 만에 혁명적인 발전을 이룩한 셈인데요, 박원순 교수는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는 의사입니다.” 이윤성 교수는 박원순 교수의 업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이 치료한 미숙아가 건강한 모습으로 첫 돌, 두 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한 마음에 매번 가슴이 뭉클해진다는 박 교수야말로 대한민국 명의 중의 명의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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