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의장의 처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원기 국회의장이 최광 국회예산정책처장의 면직 동의를 운영위에 요청한 것은 잘못이다.

우선 김 의장은 자신이 이끄는 입법부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의회는 3권분립의 정신에 따라 행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이는 권리인 동시에 의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막강한 행정권력을 견제해야 민주주의가 온전히 유지되기 때문이다. 김 의장이 취임하면서 열린우리당 당적을 버린 것도 이 같은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 최 처장이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고 쫓아내려 하니 스스로 행정부의 시녀로 돌아가겠다는 뜻인가 의심스럽다.

최 처장의 발언이 그렇게 문제될 내용이었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지난달 한 세미나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반시장적 정책의 홍수"라고 주장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노조에 치우친 노동정책, 사학과 언론에 대한 규제 등을 사례로 꼽았다. 이는 그동안 무수히 나왔던 주장이다. 야당뿐 아니라 중립적인 경제전문가, 심지어 정부 관리들도 지적했다. 장관들의 발언에서도 얼마든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국회의 예산정책처장이 발언했다고 문제를 삼겠다니 아예 여론과 담 쌓은 국회를 만들겠다는 생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쫓아내는 모양새도 꼴사납다. 최 처장 본인은 사퇴할 의사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의장이 비서관을 통해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사의 표명을 주장하니 이 무슨 코미디인가. 이래서야 의장의 권위가 서겠는가. 김 의장이 최 처장에게 "사퇴하면 새로운 국회상 정립에 도움이 되겠다"고 말했다는데 김 의장이 생각하는 새로운 국회상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김 의장은 취임 초 불편부당한 국회 운영을 다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여당이 윽박질러도 죽어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호언했다. 그러고 나서 실제 행동으로는 정부에 쓴소리를 하는 국회 간부를 몰아내고 있으니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전형이다. 김 의장은 자신의 협량(狹量)만 드러내는 결과가 된 면직 동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