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벨상관련 특별기고… 이기준 서울대 총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박수를 보낸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타전된 '노벨평화상 수상자,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 이라는 긴급 뉴스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국제공학기술2000 콘퍼런스 회의 도중 들었다.

회의에 함께 참석한 많은 외국 학자들의 부러움 속에서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한껏 느끼며 축하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문득 지난 6월 13일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북한의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감격적인 포옹을 하고,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의 남녀 한 쌍이 한반도 기를 들고 나란히 입장한 감동의 파노라마가 뇌리를 스쳤다.

우리 민족과 金대통령이 걸어 온 고난의 한 세기가 인류 최고의 영예인 노벨 평화상을 통해 올바른 평가를 받게 됐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하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올랐던 뜨거운 감동의 저 한편으로 적지 않은 아쉬움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자로서, 또 대학 교육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책임자로서 물리학이나 경제학 또는 문학 부문에서 먼저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부 학문 분야는 이론적으로는 이미 세계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적절한 투자와 지원의 부족으로 외국 학자들에게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내주고 아쉬워하는 뛰어난 인재들을 지켜보는 것은 대학 총장으로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노벨상 수상은 한 개인의 영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학문 분야의 발전과 도약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金대통령의 이번 수상은 국제사회에서 우리 민족과 국가의 위상을 크게 격상시켰다.

金대통령의 인동초(忍冬草) 인생 역정이 한반도의 좁은 남쪽 반을 벗어나 세계로 떨쳐나간 쾌거다.

金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고조시키고, 물꼬를 튼 남북협력 가도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당당히 '국제적인 인증' 을 받은 셈이니 우리 정부의 정책에 보다 무게가 실리고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이번 평화상 수상은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을 크게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겠지만, 그에 따르는 국제적인 책임과 의무도 한층 커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金대통령의 수상은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통일을 위한 서곡에 불과하다는 점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동.서독 정상회담 개최 등의 공로로 1971년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렇지만 독일의 통일에는 첫 정상회담 이후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과 엄청난 노력.인내를 필요로 했다. 다른 나라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우리는 보다 진지하게 노벨상 이후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독재에 맞서 싸우다 사형수가 됐다가 마침내 대통령이 되는 인생 유전을 겪고 최고의 영예인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인간 김대중으로서는 더 이상의 바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화의 무한경쟁 격류 속에서 민족과 국가의 방향타를 잡아 나가는 국가 수반으로서의 책무는 보다 무거워질 것이다.

이번 평화상 수상은 55년 동안의 남북대치와 식민지배라는 20세기 수난의 민족사 속에서 겨레의 고통과 좌절.절망이 정화된 의미있는 결정(結晶)이라고 할 수 있다.

金대통령이 21세기 지식기반사회와 성큼 다가선 남북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국민적 역량을 키워주기를 기대한다.

또 국민에게 미래의 비전을 줄 수 있는 정책을 과감히 시행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국민의 미래는 교육에 있고, 지식기반 사회를 대비한 과학기술 발전과 생명공학의 발전에 따르는 가치관의 정립에 있다고 본다.

金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기까지는 많은 인내와 노력, 그리고 시간의 투자가 있었다. 과학.문학.경제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나오려면 시간과 노력의 투자와 지원이 있어야 한다.

특히 창조적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제도와 교육환경이 필요한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영예를 안은 金대통령은 국민들의 밝은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지도자가 돼야 할 것이다.

서울대 총장 이기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