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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고화질 ‘하이브리드 디카’ 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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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 28면

하이브리드의 사전적 의미는 ‘잡종’이다. 요즘엔 다양한 분야에서 이 단어가 쓰인다. 하이브리드카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모두 갖춘 자동차를 의미한다. 하이브리드클럽은 골프에서 우드와 아이언의 장점을 섞은 형태다. 하이브리드는 장점이 많다. 하이브리드카는 연료 소모가 적고 그만큼 환경오염도 덜하다. 하이브리드클럽은 우드만큼 멀리 가면서도 아이언만큼 치기 쉽다. 디지털카메라 분야에서도 하이브리드가 뜨고 있다. 가볍고 편한 콤팩트 디카와 화질이 좋은 렌즈교환식(DSLR) 디카의 장점만을 취했다. 올림푸스·파나소닉이 마이크로포서드 규격을 들고 나온 데 이어 삼성도 독자 규격을 채택한 신제품을 내놨다. 니콘·캐논·소니 등 기존 규격을 고수하는 제조업체들과 한바탕 하이브리드 전쟁이 벌어질 기세다.

똑딱이+ DSLR ‘우성 유전자’만 물려 받아

틈새 상품 속속 등장
올 4월 삼성전자와 합병을 앞둔 삼성디지털이미징이 19일 신개념 디지털카메라 ‘NX10’을 국내에서 공개했다.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선보여 큰 관심을 끈 제품이다. 일반 DSLR 카메라와 같은 가로 24㎜, 세로 16㎜ 크기의 이미지센서를 장착했지만 두께가 3.9㎝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거울(미러)과 프리즘을 없앤 구조 덕분이다. 박상진 삼성디지털이미징 사장은 “가볍고 작으면서 화질은 뛰어난 디카를 찾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며 “이에 맞춰 독자 개발한 전략 제품”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국내 콤팩트 디카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1위고 세계 시장에서도 3위권을 넘보고 있다. 하지만 DSLR은 캐논·니콘의 벽에 막혀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상대방 본진에 뛰어드느니 아예 새로운 경기장을 만들어 싸우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세계적으로 하이브리드라 불리는 제품을 처음 선보인 곳은 일본 올림푸스다. 이 회사는 파나소닉 등과 함께 개발한 독자 규격인 포서드를 개량해 2008년 마이크로포서드 규격을 만들었다. 이어 지난해 7월 올림푸스가 ‘펜E-P1’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하이브리드 시대가 열렸다. 일본에서는 발매되자마자 주간 판매량 2위에 오르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20~30년 전 유행하던 똑딱이 레인지파인더(RF) 디자인과 감성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 다양한 소비자 층에 먹혔다. 권명석 올림푸스한국 영상사업본부장은 “고객 분석을 해보니 DSLR이 20~30대 남성에 집중된 반면 하이브리드 디카는 40대 이상과 여성층도 골고루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출시한 후속 기종인 ‘펜E-P2’ 역시 예약 판매 네 시간 만에 1000대가 모두 팔리는 인기를 끌었다. 펜E 시리즈의 국내 판매량은 1만5000대에 달한다.

권 본부장은 “세계적으로 수량이 달려 더 팔고 싶어도 못 팔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파나소닉이 내놓은 ‘GF-1’도 예약 판매를 시작한 지 20분 만에 준비한 500대가 모두 동났다.

하이브리드를 들고 나온 삼성과 파나소닉은 카메라·망원경 같은 광학 기술의 전통이 거의 없는 전자업체다. 디지털 시대에 맞춰 광학 성능보다는 이미지센서·영상처리 등 디지털 기술의 우위를 살린다는 전략이다. 올림푸스는 90년 역사의 정통 광학업체지만 필름 하나로 두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펜 시리즈를 내놓는 등 기존 제품과는 다른 아이디어 상품을 많이 내놓았던 ‘업계의 이단아’다. DSLR도 독자적인 포서드 규격에 맞춘 제품을 생산한다.

하이브리드 디카가 관심을 끌면서 렌즈교환식 고급 디카 시장을 놓고 DSLR 생산업체들과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해졌다. DSLR 분야에서는 전통의 명가 캐논·니콘이 선두 그룹을 형성한 가운데 미놀타를 인수한 소니가 가세했다. 여기에 올림푸스·파나소닉의 마이크로포서드 진영, 이번에 독자 규격을 들고 나선 삼성이 삼각 경쟁 구도를 이룰 전망이다.

이미지센서 클수록 화질 좋아져
필름 카메라에서 발전한 디카는 필름 대신 이미지센서로 사진을 만들어 저장한다. 보통 콤팩트 디카는 새끼 손톱 반만 한 크기(가로 5㎜, 세로 3㎜)의 이미지센서를 사용하는 데 비해 DSLR은 5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의 이미지센서를 장착한다. 일반 필름과 같은 가로 36㎜, 세로 24㎜ 센서를 쓴 것을 ‘풀프레임’, 이를 절반 면적으로 줄인 것을 크롭(APS-C, 24㎜ⅹ16㎜), 올림푸스·파나소닉의 독자 규격인 포서드(18㎜ⅹ13.5㎜) 등이 DSLR용으로 주로 쓰이는 규격이다. 이미지센서가 클수록 화질이 좋아지지만 그만큼 본체와 렌즈 크기도 커지고 무거워진다. 콤팩트 디카로는 화질이 아쉽고 DSLR은 갖고 다니기 부담스럽다. 하이브리드는 이런 고민을 해결했다.

하이브리드 디카는 크롭이나 포서드 규격의 이미지센서를 사용한다. 대신 거울과 펜타프리즘 같은 부품을 제거해서 크기와 무게를 줄인 것이다. 렌즈교환식 DSLR 카메라는 렌즈로 들어온 풍경을 뷰파인더를 통해 눈으로 보기 위해 거울(미러)과 오각형 프리즘을 사용한다. 셔터를 누르면 순간적으로 거울이 위로 올라가면서 이미지센서에 빛이 닿아 사진이 찍힌다. 그래서 이름도 일안반사식(Single-Lens Reflex) 카메라다. DSLR로 사진을 찍을 때 ‘철커덕’하는 소리가 나는 이유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택한 이유는 뷰파인더로 보이는 대로의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줌 렌즈를 통해 멀리 있는 대상을 확대하거나 조리개를 열어 뒷배경을 흐리게 하는 것 등을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RF카메라처럼 미러 없이 별도의 뷰파인더를 달면 크기와 무게를 줄일 수 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하이브리드는 RF처럼 거울을 없앴다. 하이브리드 디카를 ‘미러리스 디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

하지만 뷰파인더용 별도의 이미지센서를 달아 줌이나 조리개 조작에 따른 변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광학 기술 대신 전자 기술로 해결한 셈이다. 그만큼 본체 두께가 얇아졌다. 일반적인 DSLR 두께가 7~8㎝인데 비해 하이브리드는 3㎝대에 불과하다. 무게도 300g대로 절반 수준이고 렌즈의 크기와 무게도 작고 가벼운 편이다. 하지만 일반 DSLR과 같은 이미지센서를 사용하는 만큼 화질에서는 대등한 수준이다. 콤팩트 디카용 소형 이미지센서를 사용한 하이엔드 디카와 다른 점이다.

신제품마다 매진 행진
전 세계 DSLR 시장 규모는 2007년 690만 대에서 매년 15%씩 성장해 올해 990만 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내년을 정점으로 정체기에 접어들 전망이다. 이런 틈새를 하이브리드로 공략한다는 것이 후발 업체들의 전략이다. 올림푸스는 하이브리드 디카가 내년 600만 대, 2012년에는 1200만 대로 시장 규모가 커져 DSLR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은 NX10 출시를 계기로 올해 국내 하이브리드 디카 시장의 점유율을 50%대로 끌어올리고 내년까지 DSLR을 포함한 전체 카메라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지난해 국내 카메라 시장 규모는 240만 대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콤팩트 디카가 200만 대, DSLR이 40만 대 정도다. DSLR 시장은 캐논(40~50%)과 니콘(20~30%)이 장악하고 있다. 콤팩트 디카는 점유율 40%인 삼성을 필두로 소니·캐논 등이 강세다. 지난해 하이브리드 디카 시장은 2만 대에 못 미치지만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매진 행진이 이어져 시장 전망은 밝은 편이다.

문제는 다양한 렌즈를 포함한 사후 지원이다. 하이브리드와 DSLR은 광각에서 망원까지 자신이 원하는 렌즈를 마음대로 바꿔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하지만 다른 회사 제품끼리는 거의 호환이 되지 않는다. 캐논 본체 사용자는 캐논 렌즈를 써야 하는 식이다. 캐논이나 니콘은 이미 수백 종류의 다양한 렌즈군을 갖추고 있다. 반면 삼성은 표준 줌과 단렌즈 두 가지뿐인 데다 마이크로포서드용 렌즈도 10여 종에 불과하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의 최인수 대표는 “지난해 국내에서 DSLR 보유자가 13.5% 늘어나는 등 DSLR의 인기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단기간에 하이브리드가 DSLR을 넘어서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의 최현준 주임은 “하이브리드 디카가 캐논 500D 같은 보급형 DSLR 시장의 일부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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