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 머나 먼 중동평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지금 돌멩이 하나만 잘못 굴러도 전쟁에 휘말리고 말 것 같은 아슬아슬한 벼랑끝에 서 있다.

지난 7월 이스라엘 총리 바라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아라파트가 워싱턴 근교에 있는 미국 대통령의 별장에서 '땅과 평화를 교환' 하는 마지막 흥정을 벌일 때만 해도 세계의 화약고에도 마침내 평화가 오는가 싶었다.

그러나 협상은 곧 깨졌다. 표면적인 걸림돌은 동예루살렘의 관할권에 관한 대립이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부 강경세력들의 저항이라는 완강한 벽이 있었다. 특히 지금의 팔레스타인 위기는 압도적으로 이스라엘 국내정치의 연장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팔레스타인 자치를 허용하는 역사적인 잠정평화협정(오슬로 합의)을 체결한 것은 1993년. 그 협정에 따라서 이스라엘은 점령지에서 군대를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는 가자지구.요르단강 서안(西岸).나블루스.헤브론.예리코로 확대돼 갔다.

그때 평화의 여신이 변덕을 부렸다. 이스라엘 국내 반대파를 설득해 평화의 프로세스를 궤도에 올려 놓은 이스라엘 노동당 정부의 총리 라빈이 94년 암살됐다. 이듬해 보수적인 리쿠드당의 네타냐후가 집권하면서 평화협상은 후퇴했다.

평화협상이 재개된 것은 지난해 5월 네타냐후가 비리혐의로 실각한 뒤를 이어 충실한 '라빈의 사람' 으로 알려진 노동당의 바라크가 집권하고부터다.

라빈의 유지를 계승하겠다는 바라크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번에도 네타냐후라는 훼방꾼이 등장했다. 검찰이 그에게 비리의 혐의가 없다는 결정을 내리자 그의 인기가 치솟고 정계 복귀는 시간문제다.

네타냐후의 재기에 누구보다 리쿠드당의 아리엘 샤론 당수가 놀라고 긴장했다. 리쿠드당 안에서도 강경노선을 대표하는 그는 서둘러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를 방문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도발시켰다.

그곳은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메드가 승천했다는 곳으로 샤론의 방문은 이슬람에 대한 최대의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연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의한 테러가 가해지고,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폭력시위를 진압하면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어린 소년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프랑스 텔레비전에 들켰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위기까지 왔다. 취약한 연립정부를 꾸려가는 바라크도 네타냐후의 복귀를 경계하고 3주 후에 개원하는 의회에서 불신임을 받는 사태에 대비해 샤론과의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바라크는 정권 유지와 평화실현의 두마리 토끼 중에서 정권을 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이 걱정하는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것으로 보인다. 60만명의 정예군대를 가진 이스라엘과 3만명의 경찰병력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사이에 전쟁은 성립되지 않는다.

아랍권 전체와 이스라엘의 전면전 가능성은 더욱 작다. 이집트.요르단.시리아 같은 주변국가들에 전쟁할 동기와 의사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있다. 중동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민주당 고어 후보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클린턴이 새로운 중동전쟁의 방지를 위해 가능한 모든 외교노력을 진두지휘한다. 그리고 러시아가 나서고,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과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발등에 불을 끄더라도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미국.러시아.유럽공동체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방법으로 우선은 네타냐후나 샤론 같은 강경론자들의 집권을 차단해야 한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의 비율이 급속히 늘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선거에서 표로 나타나고, 팔레스타인 쪽에서도 분쟁 피로감이 극단적인 강경론을 누를 때 비로소 분규의 마지막 쟁점인 동예루살렘을 공동관리하는 흥정이 가능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