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읽기] 판소리 노랫말 알고 들으면 좋을텐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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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박동진 명창이 부른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 어느 제약회사의 광고로 나가 크게 히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제비 몰러 나간다" 로 시작하는 노래말은 정작 당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것 같다.

"재미 보러 나간다" 로 알아듣거나 심지어는 "돼지 몰러 나간다" 로 들었다고 하는 이도 있었으니 국악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그저 우습게 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것이 '흥보가' 의 한 대목이라는 사실만 알았더라도 쉽게 제비를 연상할 수 있으니 제비를 돼지로 오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악에는 가사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우리 음악 가운데 가사를 알아듣기 힘든 것이 적지 않다.

가곡이나 시조가 그 극치일 것이다.'동창이 밝았느냐' 에서 "동차으앙이히이히히이~" 로 모음을 해체하고 그것도 느려터지게 부르니 가사가 좀처럼 전달되지 않는다.어쩌면 하드록이나 랩에서 가사를 빨리 내뱉을 때보다 더 알아듣기 어렵다.

이렇게 말을 풀어서 부르는 창법은 어의(語義)전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처럼 사용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도 메시지보다 음성적 효과로만 목소리를 취급하는 일부 현대음악이나 록음악과 일맥상통한다.

빠를 때는 랩 못지 않다는 판소리도, 노래말을 알아듣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한자투성이의 어려운 고사성어,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물명(物名)들, 사어(死語)가 돼 쓰이지 않는 말들, 본고장 전라도 사투리 특유의 발음과 억양….

말과 노래는 다르다.선율의 흐름과 악센트를 살리면서 연주해야 하는 성악곡의 노래말을 일상 대화나 방송멘트처럼 처리할 수는 없다.

게다가 가사 있는 음악이라고 해서 꼭 가사를 다 이해해야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의 경극(京劇)의 노래말은 현대 중국어가 아니고, 셰익스피어의 대사도 오늘날 통용되는 영어가 아니어서 그 뜻을 다 알고 감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독일이나 러시아 가곡을 즐겨듣는 사람들이 다 그 가사의 깊은 뜻까지 이해하고 듣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 점에서는 오히려 판소리가 나을 것 같다.단어 하나쯤 모르더라도 앞뒤 문맥으로 미뤄 그런대로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노랫말에 내재된 뜻까지 되새기며 음악을 감상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사설을 다 알아듣지 않고서는 판소리 특유의 절묘한 비유라든가, 상황에 맞춰 소리와 장단을 짜맞추는 재미까지 맛볼 수는 없을 테니까.

임미선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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