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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여중 ‘교복 물려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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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여중 조은아·이지호(1학년·왼쪽부터)양이 3학년 선배들이 기증한 교복을 수선 중인 세탁소를 찾아 교복을 살펴보고 있다. 수선과 세탁을 마친 교복은 신입생과 재학생들에게 한 벌에 1만원에 판매된다. [조영회 기자]

19일 오전 9시30분 천안시 원성동의 모아컴퓨터세탁소. 주인 아주머니가 재봉틀에 앉아 교복 치마를 수선하고 있다. 아주머니는 지퍼가 고장 났거나 단추가 떨어진 옷은 따로 구분하고 별도의 수선이 필요 없는 옷은 세탁을 했다. 세탁소에 맡겨진 옷은 200여 벌.

이 교복은 졸업을 앞둔 천안여자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기증한 옷으로 수선과 세탁과정을 거친 뒤 포장지에 담겨 후배들에게 전달된다. 세탁소 주인 최예환(여·56)씨는 “학생들이 맡긴 교복 가운데는 새 것이나 다름 없는 옷이 적지 않다”며 “요즘 경기도 좋지 않은데 교복을 물려 입는 학생들을 보니 기특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나서 기증·구입 권장

천안여중은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교복 물려주기 운동’을 시작했다. ‘졸업생들이 입었던 교복을 어떻게 하면 좋은 곳에 쓸까’ 고민하던 차에 신입생이나 전학생들에게 기증하면 좋겠다는 데 교사들 의견이 모아졌다. 사실 교복 물려주기 운동을 구상한 건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충남도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권장했지만 학생들 참여가 많지 않았다. 남이 입던 옷을 왜 입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천안여중은 학교 입지 여건상(구도심) 교복 물려주기가 성과를 거둘 것으로 판단했다. 방향이 정해지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선 최충환 학생부장 교사 등이 나섰다. 졸업 앞둔 3학년 대상으로 교복 물려주기 운동의 중요성을 알렸다. 그 결과 2008년 첫해 100여 벌이 모아졌다. 작년에는 140여 벌이 걷혔다. 이 중에서 70% 가량이 새 주인을 찾았다.

올해는 예년보다 성과가 크다. 방법도 달리 했다. 2008년과 2009년의 경우에는 졸업식 직전에 교복을 기증받았지만 올해는 겨울방학 전부터 받았다. 현재까지 216벌(동복·하복)이 모아졌다. 이 교복들은 세탁소에서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때 빼고 광 내는’ 중이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졸업식 전까지 사나흘 정도의 시간이 더 있는 점을 감안하면 100여 벌 정도가 더 기증될 것으로 학교 측은 내다봤다.

다음 달 22일부터 판매 행사

기증된 교복은 수선과 세탁을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천안여중은 다음 달 22일부터 일주일간 교실 한 칸을 비워 ‘교복 물려주기 운동’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 교복들은 깔끔한 포장지에 쌓여 판매된다. 예년의 경우 2~3일이면 괜찮은 옷들은 모두 주인을 찾았다. 교복 한 벌 가격은 1만원. 최 교사는 “행사 첫 날 학교를 방문하면 새 옷 못지 않은 교복을 구매할 수도 있다”며 “2월 4일 치러지는 배치고사 때 신입생들에게 공지할 계획”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교복값으로 낸 1만원은 교복을 기증한 졸업생에게 주는 5000원 문화상품권과 수선·세탁비로 쓰인다. 수선비가 많이 들어가면 ‘적자’가 날 수도 있다. 부족한 돈은 교사들이 채워 넣는다. 이를 위해 교사들은 매달 급여에서 일정금액을 떼 적립하고 있다. 이 돈은 신입생 장학금으로도 쓰인다.

새 교복 한 벌 가격은 25만원 가량 된다. 공동 구매하더라도 20만원은 족히 든다. 한 벌로 중학교 3년을 난다면 그다지 비싼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 키가 10~15㎝씩 크거나, 찢겨지면 교복은 새로 맞춰야 한다. 전학을 오는 경우도 교복을 새로 맞춰야 한다.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않다. ‘물려주기 교복’이 해법이다.

1만원짜리 교복이라고 해서 얕잡아봐선 안 된다. 1년 밖에 안 된 옷도 적지 않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갑자기 키가 커 새로 맞춘 교복도 많다. 신입생과 재학생·전학생이 고르고 남은 교복은 교내 ‘복지실’에 상시 비치된다. ‘새 교복’이 필요한 학생들은 이곳에서 자신에 맞는 옷을 고르면 된다.

천안여중 노희삼 교감은 “수선을 마친 교복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학부모나 학생, 그리고 교사까지 한 시름을 놓게 됐다”며 “신입생은 물론 전학생이나 재학생들이 모두 선배들이 물려준 교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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