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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 막아라’ 사원 복지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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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코오롱아이넷 직원들이 서울 가산동 본사에서 원어민 강사를 초빙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강사 초빙료 등 필요 경비를 회사가 지불한다. [코오롱아이넷 제공]

금연이나 체중 조절, 자격증 취득…. 직장인이면 연초마다 한번쯤 도전해 보는 과제지만 금세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제 직장의 사원 복지는 임직원들의 ‘작심삼일(作心三日)’을 막아주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회장님’이 나서 임직원 한 명 한 명에게서 금연서약서를 받아내는가 하면 요즘 유행하는 ‘복싱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위해 권투선수 출신을 트레이너로 초빙하기도 한다.

정보기술(IT) 전문업체인 KTDS에서 6년째 근무 중인 송종근(38)씨는 거의 매일 아침 회사 체력단련실로 달려가 복싱체조를 한다. 그는 “매년 초 헬스클럽을 찾곤 했지만 금세 그만뒀다. 올해 회사에서 주선한 ‘몸짱 만들기’ 특별 프로그램은 싫증이 덜 난다”고 말했다. 구자준(60) LIG손해보험 회장은 요즘 흡연 직원들과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금연서약을 한 직원들과 약속의 징표로 ‘증거사진’을 남기는 것이다.

◆신개념 사원 복지=KTDS는 회사 체력단련실을 최근 고급 피트니스센터 수준으로 단장했다. 직원들은 전문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을 뿐 아니라 식단 등 섭생관리 노하우도 조언을 받는다. 정철수 트레이너는 “이른 아침에 사장과 직원들이 격의 없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했다.

미국계 제약사인 한국애보트는 올 들어 직원 건강관리를 위한 다이어트 프로그램 ‘라이프 체인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직원 두세 명이 팀을 이뤄 체중 관리 계획을 내고, 반 년 뒤 이를 평가해 목표에 가장 근접하게 체중 감량을 한 세 팀을 골라 특별휴가비를 주기로 했다.

‘작심삼일’ 방지 기법이 가장 ‘진화’한 분야는 금연이다.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은 금연서약서를 임직원들에게서 일일이 받으며 한 사람씩 기념(?)사진을 함께 찍어 한 장씩 나눠 갖는다. ‘금연을 지키라’는 무언의 압력이긴 하지만 그래서 금연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올 연말 종무식 때 구 회장과 해당 직원들이 이 사진을 함께 꺼내보면서 금연 결심을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서울우유는 경기도 양주공장 전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올 초에 협력업체와 공장 직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금연공장 선포식’을 열었다. 양주시보건소도 직원들의 금연 상태를 이따금 점검하고 상담을 해 주기로 했다. 회사가 책값을 대주는 것은 이제 흔한 일에 속한다. 유아복 업체인 모아베이비는 올해를 ‘마음껏 책 읽는 해’로 정했다. 무슨 책이든 읽은 뒤 간단한 독후감을 내는 조건으로 책 구입비를 지원한다. 설문조사를 해 봤더니 ‘독서로 자기계발을 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코오롱아이넷은 국제무역사 자격증 공부 모임을 비롯해 어학·멘토링 분야 등 다양한 사내 학습 동호회를 지원한다. 이른바 ‘CoP(Communities of Practice)’ 프로그램이다. 점심시간을 활용, 외부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듣는다. 관련 교재와 강연료는 회사가 전부 댄다.

◆기업문화로 쌓여=경희대 경영대학원의 송상호(조직문화론) 교수에 따르면 기업들의 이런 노력은 단순한 사원 복지 차원을 넘어 조직의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경기가 불투명해 급여를 많이 올려주지 못해도 구성원을 세심하게 배려함으로써 조직 충성도와 근로의욕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아베이비의 안경화 대표는 “독후감을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지식과 업무 경험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자연스레 조성된다”고 말했다. 김종선 KTDS 사장은 “체력단련장에서 함께 땀 흘리며 뛰면서 사장부터 신입 직원까지 공동운명체라는 동료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근래 업계에 번지는 ‘GWP(Great Work Place)’, 즉 ‘훌륭한 일터’ 운동을 실천하는 셈이다. 아주대 조영호(경영학) 교수는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직원 복지를 생각할 여지가 적지만 경기회복기엔 인재 이탈을 막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직원의 자기계발을 돕는 프로그램은 소속감을 배가시킨다”고 덧붙였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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