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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일자리 가뭄 후유증도 가지가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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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 지난해 본사와 계열사 직원을 대거 해고했다. 무려 2만1000여 명이다. 전체 직원의 9%다. ‘오마하의 현인’도 불황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경기가 좀 나아졌다지만 아직 고용 시장엔 찬바람이 거세다. 미국과 유럽의 지난해 실업률은 10%에 이른다. 실업자 증가는 경제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일자리가 많은 지역은 사람을 끌어 모으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은 미래 성장동력까지 잃어가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반감은 더 커졌다. 임시 방편으로 도입한 고용 정책이 고착화되면서 생산성 하락을 걱정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미국의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타미 드퓨 스미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콜센터 일을 한다. 집안 일을 하다 잠깐 틈이 나면 집에서 전화상담을 하는 식이다. 임금은 분 단위로 지급되고, 의료보험이나 휴가는 없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의 피터 카펠리 HR센터장은 “수도꼭지처럼 언제든 열었다 잠글 수 있는 임시직이 늘고 있다”며 “기업들이 고정비용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위직만이 아니다. 인력파견업체인 켈리 서비스는 25만 달러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는 변호사·과학자 등 100여 명을 임시직 임원으로 여러 회사에 파견했다. 이런 수요는 1년 새 50% 늘었다.

경기 침체에 따른 구직난은 인구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USA투데이는 최근 인구 센서스 자료를 분석해 불황이 북동부와 중서부 지역의 청소년 인구를 감소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몬트·노스다코타·메인 등에선 10년 전보다 청소년 인구가 10% 이상 줄었다. 가뜩이나 일자리가 없어 지역 경기가 좋지 않은데, 미래의 근로자인 청소년까지 줄면서 지역 경제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국제 노동시장에선 ‘회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의 은행 HSBC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실업난으로 미국에 살던 외국인의 23%가 귀국을 고려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선 해외에 나가 살던 자국민의 국내 취업 신청 건수가 1년 새 20%나 늘었다. 외국에 있던 자국민까지 몰려들면서 외국인 근로자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러시아는 올해 이주 노동자 허가 쿼터(130만 명)를 지난해보다 30% 줄였다. 이 바람에 중앙아시아 고용 시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자리 나누기가 생산성을 낮추기도 한다. 함께 살자고 한 일이지만 부작용도 뒤따르는 것이다. 주로 유럽지역에서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감원을 줄이려고 도입한 주4일 근무에 맛을 들인 근로자들이 계속 주4일 근무를 하겠다고 해 벨기에 기업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에선 근로시간 단축제가 지속되면서 단위 노동비용이 6% 정도 높아졌다.

일자리가 불안해지자 투자 성향도 안정 지향형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지난해 개인 저축률은 4.5%였다. 불황에도 저축률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 컨설팅 회사인 앨릭스파트너스가 지난해 11월 7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3년 내 주식 투자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김영훈·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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