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내란 치닫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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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인도네시아가 심상찮다. 자칫 내란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험악한 분위기다.

28일 자카르타 남부지방법원이 내린 수하르토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기각 결정 후 개혁세력과 친(親)수하르토 세력간 충돌로 수도 자카르타 이곳 저곳이 이미 피로 얼룩졌다.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까지 학생들 항의시위를 내버려 두라며 노골적으로 법원 결정에 불만을 표시하는 가운데 각 정파와 군부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인도네시아 상황은 점차 위기로 몰리고 있다.

◇현지 상황=원 결정 직후인 28일 오전 10시30분쯤 법원 주변 잘란 라구난에서 친.반 수하르토 세력간 첫 충돌이 벌어져 최소한 1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반수하르토 시위대는 수하르토파가 몰고온 버스.군용트럭.오토바이를 불태웠으며 12㎞ 떨어진 잘란 센다라 내 수하르토 자택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는 자카르타 시내는 물론 교외에서도 밤늦게까지 계속됐으며 주민들도 시위에 합세해 군인과 경찰을 구타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학생운동단체는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전망=유수출국기구(OPEC) 정상회담 참석차 베네수엘라를 방문중인 와히드 대통령은 28일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창문에 돌을 던지는 것이다. 그들을 내버려 두라" 며 노골적으로 반수하르토 시위를 부추겼다.

와히드는 법원의 이번 결정에 긴장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수하르토 단죄와 개혁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또 한번 '공수표' 를 보였다는 자괴감이 크다.

와히드 정부는 이번 결정이 친수하르토 세력 작품이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이번 결정을 내린 자카르타 남부지법은 5천4백60억루피아(약 6백82억원)를 부정 대출한 혐의를 받아온 발리은행 사건의 주역이자 수하르토의 측근인 도코 트자드라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친.반 수하르토 세력이 모두 일어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반수하르토 세력은 "수하르토를 법정에 세우지 못한다면 정권퇴진 투쟁까지 전개하겠다" 는 결의를 보였다. 친수하르토 세력도 "수하르토에 대한 사법처리 시도가 계속된다면 극한 투쟁도 불사하겠다" 고 말한다.

골카르당.국민계몽당 등 야당세력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군부는 일단 숨을 죽이고 있다.

그러나 와히드에게 일방적으로 당해 온 군부는 '와히드의 위기는 우리들에게 기회' 란 생각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위기는 정작 지금부터다.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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