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수교 10년 '급속 밀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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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과 러시아(당시는 소련)가 수교한 지 30일로 10년이 된다.

지난 10년간 한.러 양국의 관계는 여섯 차례의 정상회담을 비롯한 고위급 교류, 러시아제 무기구매를 비롯한 방위협력, 연간 7만여명에 이르는 민간인 교류 등 양적.질적으로 큰 성장을 이룩했다.

정치적으론 양국간 상호 건설적 동반자관계 선언을 내놓은 수준으로 발전했고, 경제적으로는 주요한 교역국이 됐다.

러시아는 그동안 각종 외교무대에서 우리의 정책을 지지, 동해의 일본해 표기 개정문제와 인삼교역 표준화문제 등 국제회의에서 한국 입장을 뒷받침했고 대북 햇볕정책 등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을 지지해왔다.

양국간 교역도 1992년의 1억9천만달러에서 96년 40억달러로 급증한 뒤 한국의 IMF사태, 러시아 금융위기 등으로 98년엔 일시적으로 20억달러 규모로 떨어졌다.

그러나 99년부터는 러시아 경제회복 등으로 다시 급증하기 시작해 99년 22억달러, 올 들어 8월 현재 17억달러에 이르렀다.

또 한국과 러시아간 과학기술협력도 크게 늘어나 반돤?첨단소재.유전공학을 비롯한 각종 분야에서 러시아 및 옛 소련 출신 과학기술자 4백여명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에 의해 VCR의 다이아몬드 헤드코팅 기술, 김칫독 냉장고 기술, 홍채(虹彩)인식기술, 전자저울에 들어가는 첨단제어기술 등 우리에게 친근한 제품들이 개발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남침을 지원한 전쟁후원자로 한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러시아와 한국이 수교 10년 동안 이룩한 이러한 변화는 절대로 적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양국관계에 긍정적인 부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97년 발생한 한.러간 스파이 스캔들이나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최덕근 영사 살해사건 등 불미스런 일도 많았다.

여기다 소련 해체와 이에 따른 대소 경협자금 연체문제, 러시아 혼란 등은 국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관심의 열도를 깎아 버렸다.

이 때문에 양국 상호협력 가능성이나 수교 초기의 열의에 비한다면 양국관계는 매우 열악한 수준이며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러시아측은 수교 후 일관되게 한국 입장을 지지해 왔지만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시절 추진한 4자회담에서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배제시킨 데 대한 섭섭함과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측의 이러한 불만은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외무장관 시절 한.러관계 냉각화 등으로 나타났으며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이 친한 일변도에서 남북한 등거리 외교란 현실주의 외교로 선회하게 하는 배경이 됐다.

지난 2월 '조.러 신우호조약' 체결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러시아의 대한반도정책 변화를 대내외에 알리는 공식 선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러 양국관계는 발전 가능성이 더 크며 남북 정상회담후 변화된 한반도 환경은 한.러간 협력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여기다 이르쿠츠크 가스전개발, 경의선의 시베리아 철도 연결, 나홋카 한.러공단개발 등이 본격화한다면 양국관계 발전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크게 확대될 게 분명하다.

김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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