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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GRE 문제 툭하면 유출 의혹…한국 수험생 미국서 믿어주겠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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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강남의 유명 어학원 강사가 미국 SAT(Scholastic Aptitude Test)의 문제지를 빼돌려 학생들에게 유포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다른 어학원에서도 SAT 문제지 유출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 사건 전에도 SAT는 물론 미국 대학원 입학자격시험(GRE) 등의 문제 유출 의혹이 잇따라 미국 대학가에서 한국 학생들에 대한 신뢰도 하락이 우려되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18일 SAT 문제지를 빼돌려 미국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이들이 고득점을 받을 수 있게 도운 혐의(업무방해)로 강남 E학원 강사였던 김모(37)씨를 불구속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5월 일부 언론에서 문제 유출이 보도된 이후 경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SAT가 나라별로 시차를 두고 치러진다는 점을 이용했다. 우리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SAT는 미국 교육평가원(ETS)의 주관으로 전 세계에서 같은 날 실시된다. 하지만 시차 때문에 태국 방콕에서는 미국 코네티컷주보다 12시간 먼저 치러진다.

김씨는 지난해 1월 24일 오후 3시쯤 SAT 시험이 치러진 태국 방콕 소재의 한 학교에서 시험을 마치고 나온 수험생으로부터 50바트(약 1만5000원)를 주고 문제지를 구입했다. 이후 문제지를 스캔해 미국 코네티컷주에 거주하는 두 김모(19)군에게 오후 5시30분쯤 e-메일로 전송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학생이 문제를 건네받은 시각은 미국 시간으로 같은 날 오전 5시30분. 이들은 먼저 시험지를 받은 덕분에 몇 시간 후 치러진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을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두 학생은 2008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E학원에서 강사 김씨에게 한 회당 30만원씩, 한 과목당 많게는 300만원을 주고 10~12회 수업을 받았다. 경찰은 두 학생의 부모를 통해 이들에 대해 소환을 통보한 상태다.

◆시험 부정 의혹 잇따라=SAT·GRE 등 미국 대학과 대학원 입학을 위한 시험문제가 유출됐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서울 광진구의 한 외국인학교에서 SAT에 응시한 대학생 2명이 감독관이 시험지를 나눠주는 순간 시험지를 들고 학교 밖으로 달아났다가 13시간 만에 붙잡힌 바 있다. 2007년 3월엔 “서울 강남의 어학원에서 나눠준 문제와 비슷하다”는 의혹이 나와 채점을 담당하는 ETS가 당시 한국에서 응시한 900여 명의 성적을 취소했었다.

2002년엔 한국 학생들이 GRE 문제를 인터넷을 통해 유출했다가 적발됐다. ETS는 한국에서 치르는 GRE시험을 두 차례로 줄였다. 일본에선 매달 이 시험을 볼 수 있다.

 만약 대규모 입시 부정이 확인되면 한국의 SAT 시험은 신뢰를 잃을 확률이 크다. 2007년 중국의 경우처럼 한국 내 일부 고사장이 폐쇄될 가능성도 있다. 당시 중국에선 SAT 관련 시험 부정행위가 발생해 시험장 몇 곳이 폐쇄됐었다.

◆문제 유출한 ‘족집게 강사’는?=경찰은 “김씨는 족집게 강사로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미국 동부의 명문 B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가 일했던 E학원 이모 원장은 “처음에는 B대를 나온 것으로 믿고 고용했지만 경기도 소재 모 대학 회계학과를 나온 것으로 확인돼 교육청에서 정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내가 알기로 김씨가 아주 잠깐 미국에 다녀온 것 외엔 유학을 가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잠시 일했던 한 어학원 관계자도 “그는 대단한 파워(실력)를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고 했다. 김씨는 유학 경험이 없는데도 학원에서 1년에 1억원에서 1억5000만원의 고액 연봉을 받았다.

송지혜·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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