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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구글 vs 중국 충돌의 끝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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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때 세계 지도의 태반이 붉게 물들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잘나가는 소련이 더 잘되기 위해 하는 개혁’쯤으로 오인(誤認)하는 세력도 있었다. 하지만 소련은 붕괴했다. 간단하기에 오히려 그럴듯해 보이는 붕괴 원인이 있다. 바로 복사기다. 소련은 복사기 통제를 시도했으나 지하 출판물인 사미즈다트 등 반체제 정보물의 범람을 막을 수 없었다. 복사기는 억압적 체제와 상극(相剋)이었다.

미국은 소련 경우의 복사기처럼 인터넷이 중국 정치체제의 자유화를 유도하기를 내심 바란다. 인터넷은 복사기보다 훨씬 강력한 정보의 복제·유포 수단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기대가 현실화되고 있지 않다. 중국 네티즌은 민주화를 희구하는 게 아니라 애국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에 대한 인터넷 검열을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기대가 어긋난 원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도 중국 정부의 정보 통제 규정을 따라야 한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서비스인 구글은 2006년 구글차이나(Google.cn) 서비스를 개시하며 중국 당국의 검열 요구를 받아들였다. 구글은 이른바 ‘거세된 구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활동했다. 그러나 최근 검열의 중단을 위한 협상을 요구하며 중국 시장을 아예 떠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구글의 또 다른 불만은 해킹이다. 지난해 12월 구글의 e-메일 서비스에 대한 해킹이 있었다. 타깃은 중국 내 인권 운동가 e-메일이었다.

구글 문제의 배경에는 미국이 지난 수십 년간 세계를 바라본 두 이론의 위기가 있다. “민주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과 “자유시장은 독재와 양립할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다. 중국을 염두에 두고 두 이론을 연결하면 이렇다. “중국이 시장경제체제로 운영되면 결국 민주화되며 미국과 중국은 군사적으로 충돌하지 않게 된다.”

미국이 희망하는 체제가 중국에 들어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대로 가면 ‘경제 초강대국’이 된 ‘비민주국가’ 중국과 ‘민주국가’ 미국은 싸우게 된다. 미국은 정치·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평화론·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이론대로 되지 않는 것은 중국에 인터넷 자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이미 구글이 미국 정부의 대리인(proxy)으로서 중국에 싸움을 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구글이 중국을 떠나면 구글만 손해다. 구글은 4000만 중국인 사용자를 확보했다. “나가려면 나가라”는 네티즌도 있지만 “구글 없이는 못 산다”는 층도 두텁게 형성했다. 그럼에도 구글은 기득권을 버리고 철수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구글이 총대를 멘 것은 아닐까.

지난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당선됐으면 구글 문제가 더 시끄러웠을지도 모른다. 매케인은 ‘민주국가연맹(League of Democracies)’ 창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회원국 자격은 의회민주주의·인권·법치였다.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했다. 이 구상에 대해 싱가포르대학 공공정책대학원장인 키쇼르 마부바니는 “역사상 가장 멍청한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1일 구글 문제와 관련, 인터넷 자유와 보안에 대한 스피치를 한다.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는 않겠지만 할 말은 할 가능성이 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성향을 봐서도 그렇다. 그는 “중국에 보다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오바마는 지난해 11월 중국 방문 시 중국 학생들과 만나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은 1970~80년대 일본과의 무역 마찰 문제에서 사안별·산업 부문별 접근법을 구사했다. 그 결과 전면적 경제전쟁으로는 흐르지 않았다. 구글 문제에 있어서도 확전을 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렇더라도 구글 문제는 자유라는 가치를 둘러싼 전 세계적 문명전쟁의 첫 번째 총성이 될 수도 있다.

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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