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을 낮춰요] 덩달아 박수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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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상상력이 통제를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권력이 쳐놓은 온갖 규제의 틀 속에서 개개인의 넘쳐흐르는 예술적 재능은 지극히 한정된 표현 방식을 따라야 했고, 대중은 걸러진 양분만을 섭취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많은 것이 변했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제도권이나 보수 세력들의 간섭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시절에 비할 바는 아니다.

어느덧 '좋은 세상' 이 되어버린 것이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자유가 보장되는 정신적 풍요로움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세상 말이다.

하지만 얄팍한 껍질을 한 꺼풀만 벗겨 보라. 그 세상에서 문화는 단순한 유행과 동일시되고, 상상력은 외압에 억눌리는 대신 자본의 논리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며, 모든 가치의 척도는 다름 아닌 '상품성' 이다.

그 어이없는 세상 속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옛 스타는 완벽한 영웅이 된다.

그의 새로운 변신은 음악적으로 전혀 새로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음악 담론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극도로 빈약한 우리 대중음악 시장의 위상과 방송매체의 단편적인 의식 수준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가 슈퍼스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미 국내의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그룹들이 행했던, 그리고 외국에서 주류 음악의 하나로 자리해 있는 음악이 새삼스럽게 이러쿵저러쿵 거론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다양성의 부재' 에서 비롯된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가수가 존재할 정도의 시장 상황이라면, 어느 장르의 음악이라도 설 자리가 있어야 마땅하다.

댄스나 발라드가 수십만 장씩 팔려나간다면 다른 한쪽에선 록이나 재즈, 블루스, 포크음악이 단 몇천장씩이라도 팔려야 한다는 뜻이다.

제대로 된 문화 소비 구조라면 제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음악시장의 주 소비층인 10대와 20대 초반이 즐겨듣는 유행음악을 제외한 음악들이 대다수의 음반 회사와 방송, 매체, 음반 도소매점, 그리고 대중들로부터 어김없이 외면 당하고 마는 현실에서 그런 당연한 상황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구조하에서 다른 어느 슈퍼스타가 난데없이 인더스트리얼이나 트립 합, 또는 기타 '생소한' 음악을 들고 나온다면 그 팬들과 매체는 또 다시 난리를 칠지도 모를 일이다.

김경진 <대중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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