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의 Top Woman] 1. 줄리아 크리스테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9면

21세기는 이른바 '여성의 세기' .과연 다가올 1백년은 여성들의 묵은 고민을 해결해주고 새 꿈을 선물하는 '약속의 세기' 가 될 것인가.

새 세기의 시작을 불과 3개월여 남겨둔 지금, 경제적 독립을 갈망하는 여성들의 바람은 여전하며 우리의 터전은 마음놓고 살기엔 아직 이르다.

세계 여성들의 공통 화두를 뽑아 주제별로 세계 여성 리더들에게 들어보는 특집기획을 시리즈로 마련했다.

인터뷰는 e-메일로 진행했다.

- 여성운동이 본격화한 금세기엔 과연 '여성성' 이란 무엇이냐를 두고 논란도 많았지요. 여성성을 어떻게 정의해 나가야 할까요.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여성의 몸을 '조에' (삶을 주는 자)와 '비오스' (삶의 의미를 주는 자)로 구별해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역할 이외에 삶의 의미와 사회참여에 대해 질문할 것을 유도합니다.

물론 이 문제는 오래 전 여성운동자들이 제기한 거죠. 그러나 지나친 여성해방운동의 결과로 모성의 역할이 무시된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여성이 이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여성들이 어머니 역할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동시에 여성은 새로운 문화생산자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 두 역할의 균형을 이루는 방법을 찾는 게 여성들의 숙제죠. "

- 최근 들어 육아에 참여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어요. '제1의 성' 의 저자인 헬렌 피셔는 여성선조들의 출산과 육아의 역할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성이 진화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됐다는 입장인데 그처럼 남성들의 육아참여가 그들을 달라지게 할까요.

"저는 어떤 남성도 여성들이 인류의 어머니로서 수행하고 있는 이 특별한 역할을 대등하게 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관계에는 당연히 남성들이 참여하지만 모성을 통해 여성들이 경험하는 동일화라든가 남에게 베푸는 헌신적인 열정이 빚어낸 신비로운 체험들을 경험하는 남성은 극히 드물지요. 한편으로 이 모성관계가 소유욕이나 잔혹성 때문에 폭력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현대 여성들은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는 상태죠. 이것이 요즘 문제입니다. "

*** 남녀의 利害 서로 달라

- 남자에게도 여성성.모성성이 있고 여자에게도 남성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계시죠. 그렇다면 이상적인 부부란 어떤 겁니까.

"성의 세계나 정신분석 과정을 통해 보면 각 성은 심리적으로 양성성을 띠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양성성이 여성에게 더 강하게 잠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에 들고, 어머니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지요. 여성은 생래적으로 동성애 관계가 있다는 말이죠. 이렇게 보면 이상적인 부부관계란 네 명의 관계란 생각이 듭니다.

남자=한 남자+한 여자, 여자=한 여자+한 남자로 볼 수 있으니까요. 이 심리적인 네 명이 함께 균형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부부상이겠지만 사실상 매우 어려운 일이죠. "

- 근래 이혼율이 늘어나는 이유를 여성의 독립성.해방성의 결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결혼 후 우울증을 앓는 이들도 많고 이혼 가정의 아이들은 부부간의 사랑에 의문을 품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 걸까요.

"서양의 과격한 여성해방운동은 결과적으로 성의 전쟁으로 몰고 갔습니다. 상대방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보다 여성 자신의 주체성과 독립성만을 요구하다보니 부부관계와 가정이 피해를 보았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남녀 사이의 이해관계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여성의 사랑은 주로 자신에게 관심이 쏠려 있고 남성의 사랑은 대상을 바꾸는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여성은 어머니나 아이에게 관심을 쏟지만 남성은 밖에서 과격한 행동을 하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은 상대방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남성이건 여성이건 아직 미성숙해 모든 것을 즉시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현대문화는 자기 욕구를 빨리 만족시키려들죠. 그래서 상대방이 나와 같지 않으면 곧 관계를 끊을 준비가 돼 있어요. 게다가 사회는 점점 더 욕망을 즉시 만족시키는 문화에 가치를 두고 이를 지향하고 있어 문제해결은 더욱 어렵습니다. "

*** 희생 대신 배려를

- 그럼 여성해방운동가들이 배격했던 '희생' '복종' '인내' 같은 전통적인 여성의 미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서 투쟁한 여성 중 한사람인 제가 이렇게 말하면 놀랄지 모르겠습니다만 전통적인 여성의 미덕은 지켜나가야할 소중한 가치라고 봅니다.

다만 '희생' 대신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헌신' , '복종' 대신 '온유함' , '인내' 대신 '주위사람들에 대한 염려' 라고 합시다. 이런 가치는 여성이 아이에게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 주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

- 근래 들어 여성의 발가벗은 몸을 보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일부 여성들은 지금까지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신성한 것으로 숭배하면서 동시에 사악한 것으로 취급하는 극단적인 이중성을 보였기 때문에 중화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합니다만.

"여기엔 두 측면이 있습니다. 나체를 드러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여성 스스로 제 몸과 화해하는 것이지요. 발가벗은 여인의 육체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서 여성도 자신의 관능적인 면을 의식하게 되죠.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는 몸' 으로 만이 아니라 '관능적인 즐거움을 누릴 권리' 도 있다고 생각하지요.

다른 하나는 여성의 몸을 사랑이나 애정을 표현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상업적인 수단으로 남용해 천박하고 음탕한 대상물로 보게 하는 것이죠. 이것이 성적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여성의 모습을 추하게 만들고 모독함으로써 남녀관계에 해를 끼칩니다. 이런 현상을 여성해방의 일부라고 여긴다면 오해죠. "

- 이성은 고귀하고 감정은 천하며 남성은 이성적, 여성은 감정적이라고 평가해왔죠. 말하자면 이분법적 개념들을 활용해 남성성은 높게, 여성성은 낮게 평가해왔습니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의 지위로 올라가야 비로소 동등해진다는 인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여성 해방과 성취는 어떤 형태가 될 것으로 보십니까.

"이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지금까지의 철학이 남겨준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크 데리다란 철학자는 둘간의 상호 관련성 - 문화란 자연없이 존재할 수 없고 자연 또한 문화란 개념을 통해서야 이해가 된다는 - 을 찾고 있기도 합니다.

여성들은 여성해방운동 과정을 통해 여성의 경험가치를 알게 되고 인류학.문학이론.정신분석이론 등을 통해서도 여성이 주체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여성성이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적인 금지, 문화, 종교, 이념적인 가치 내에서 형성되는 성질이라는 것이죠. 여성이란 생물적이면서 상징적인 관계임을 인식하고 기왕의 남녀관계를 설정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여성 스스로 독립된 주체로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여성 상상력 활용해야

- 여성들이 남성보다 새로운 의미질서를 생성해낼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보고 계십니다. 지나친 여성예찬론은 아닌지요.

"여성은 남성과 달리 상징계와 기호계의 경계에서 활동합니다. 상징계와 기호계의 대화라고 하면 질서.법 비판 등 준엄한 의식세계에 반발해 검열.삭제 과정을 완화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여성들은 아이를 기르고 있고 가부장적이고 엄한 문화에서 소외자이기도 하므로 특별히 기호계와 친숙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성들이 대개 몽상적이고 상상의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비판과 쾌락, 기존질서를 파괴하지는 않지만 반발하는 등 이 두 세계를 넘나들기 때문이죠. 좋은 성과를 내야하고, 돈을 벌어야 하며, 사회에 적응을 잘 해야 하는 가치만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몽상적일 수 있는 능력, 상상력을 가진 재능은 인류의 귀중한 재산입니다.

따라서 여성들은 관리자.은행가.정부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여성들이 정적이고 민감한 주체로서 제 역할을 잊지 않는다면 실용성에 바탕을 둔 문화에만 집착하지 않고 감수성을 중요시하는 문화를 창조해내리라 생각합니다. "

- 한 단어로 '여성문제' 라고 해도 각국, 또 각자 처해 있는 사정에 따라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이제는 여성문제를 하나로 묶어 해결하려는 데서 벗어나야 합니다. 각자 개성을 살리고 그 특이함에 가치를 부여합시다.

각 개인의 특성을 이해한 다음이라야 그에 따른 새로운 연대성을 창출해 낼 수 있으니까요. 20세기는 나치와 스탈린 주의에 의해 주도된 전체성으로 우리 모두 고통을 겪었습니다.

개인이 독립해 있는 상태에서 서로 연대감을 형성할 줄 알아야만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21세기 여성들은 이를 배우고 개성을 발굴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e-메일 인터뷰=홍은희 편집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