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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지검 특수부와 박근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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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딱 이 한마디였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 그는 2006년 7월 장 출혈로 긴급 수술을 했다. 그리고 요양을 위해 친동생에게 ‘잠시’ 권력을 넘겼다. 그 사이 동생은 형의 측근을 죄다 몰아냈다. 카스트로가 누구인가. 1959년 반란군을 이끌고 혁명정부를 수립, 50년 가까이 쿠바를 전권 통치한 인물이 아닌가. 그런 카스트로가 요양을 마치고 동생을 만나선 서운함 하나 내비치지 않고 “잘했어”라고 말한 이유는 뭘까.

권력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나 돈, 정보와 같은 권력이란 늘 한 곳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밀려난 권력은 순식간에 붕괴한다. ‘살아 있는 권력’은 그래서 무섭다. 그러나 몇몇 예외적 상황이 지금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

먼저 일본의 도쿄지검 특수부. 이곳에선 요즘 일본 정계 최고의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무려 54년 만의 정권 교체가 이뤄져 새 정권의 힘과 기세가 가장 막강한 때이다. 이런 서슬 퍼런 때에 ‘살아 있는 권력’인 오자와를 가차 없이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도쿄지검 특수부의 불변의 원칙은 “법만 본다”다. 그래서 권력과의 충돌을 피하려는, ‘아카렌가’(빨간 벽돌집)로 불리는 법무성의 고위 관료와 갈등을 빚는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검찰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근본적 차이점이 하나 있다. 47년 도쿄지검 특수부 출범 이후 33명의 특수부장이 거쳐 갔지만 나중에 검사총장(한국의 검찰총장)이 된 이는 불과 3명. 즉 도쿄지검 특수부장이란 자리는 출세를 위한 디딤돌이 아니다. 자신의 검찰 인생을 거는 사실상 마지막 자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심 없이 원칙에 집착한다. 일본 국민이 도쿄지검 특수부에 절대적 신뢰를 보내는 이유다.

한국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그는 절대권력에 수그린 적이 없었다. 사안마다 제 목소리를 냈다. 상식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를 지탱해준 것은 도쿄지검 특수부와 같은 ‘원칙’을 굽히지 않는 자세였다. 그래서 그가 세종시 신안에 반대하는 이면에 “이 주제로 재미 좀 봤다”(노무현 전 대통령)는 식의 사심이 있다고는 결코 보질 않는다. “제왕적이다”는 일각의 비판도 나로선 수용하기 힘들다.

그러나 ‘살아 있는 권력과의 대립’이란 공통분모를 지닌 두 사례지만 도쿄지검 특수부와 박근혜는 분명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법과 원칙만 보면 된다. 하지만 정치인 박근혜는 원칙뿐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와 국민의 마음도 봐야 한다. 여론이 어떻게 형성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론이 바뀌어도 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 것은 그런 점에서 무책임했다. 여론은 곧 국민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여론보다 소신을 중시하는 건 자유지만, 여론을 무시하는 건 과신이다. ‘원칙의 정치인 박근혜’에 적당한 균형감각이 가미되면 국민은 그에게 보다 흔쾌히, 보다 큰 신뢰와 권력을 주지 않을까 싶다.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