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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길을 간다, 대학생 3인3색] 20살 용기로 통념 깨고 도전하라!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대학생들은 괴롭다. 스펙은 상향평등화됐는데 연봉은 하향평준화됐다. 낮춘다고 낮췄는데도 어른들은 ‘눈을 더 낮추라’고 이구동성이다. 괴로운 대학생들 틈 속에서, 오랜만에 눈이 반짝거리는 20대들을 봤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이들이다.

청소대행업 창업한 민제헌(동국대 경주캠퍼스 중어중문과 2년 휴학)
“점포 없이 할 수 있는 창업 노렸죠”

청소대행·IT업체·봉사활동 … 창업자금 1억원 지원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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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로 벌던 300만원보다 비전이 있는 150만원이 더 낫습니다.”

민제헌(27)씨는 청소대행업으로 월매출 600만원을 올린다. 민씨가 매월 손에 쥐는 수입은 300만원. 그나마도 동갑내기 고종사촌 어중규씨와 나눈다. 매월 수중에 150만원이 떨어진다.

민씨가 창업을 결심한 건 2008년 군 제대 후다. 제대한 다음 날부터 고향인 울산에서 창업 종자돈을 마련하려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저녁에는 노래방에서 일하고 낮에는 주차장에서 일했다.

건설업을 하는 동창네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렇게 모으니 월 300만원 수입이 잡혔다. 6개월을 쳇바퀴 돌듯 일하니 통장에 1800만원이 모였다. 함께 창업 준비를 했던 친구와 3000만원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창업 정보를 찾아다녔다. 대학생들이 창업하겠다고 하니 선뜻 만나주는 자영업자도 많았다. 전제조건은 점포가 없어야 한다는 거였다. 점포를 내려면 1억원 가까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택한 게 청소대행 프랜차이즈였다. 2008년 8월 가맹비 1000만원을 내고 700만원을 들여 청소도구를 샀다. 500만원짜리 승합차도 마련했다.

울산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3곳과 베니건스 매장 1곳의 청소를 정기적으로 했다. 카펫 청소를 하고 내장재에 왁스 칠을 하면 됐다. 문제는 개인적으로 영업을 뛰어 예식장 청소일을 하면서 생겼다. 오랜시간 정성을 들여 청소해도 도무지 티가 안 났다. “새벽에 청소하다 말고 본사에 전화를 걸어 방법도 물어봤어요. 청소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민씨는 동업자인 친구와 청소 기술자를 찾아 2008년 12월 서울에 올라왔다. 청소 사무실 한켠에서 둘이 한겨울을 나면서 기술을 배웠다. 올봄 이들은 인천에 자취방을 구해 사무실 겸 쓰면서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섰다. 그런데 친구가 덜컥 고향에 내려갔다. 앞이 캄캄했다. 민씨는 가끔 일을 도와주던 고종사촌 어중규씨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이들은 꾸준히 영업장을 늘려나가 지금은 강남, 이태원, 수원 등 6개 음식점과 공장 2곳을 청소한다. 남들이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일이니 밤낮이 따로 없다.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다. 하지만 민씨는 자신이 하는 일을 멋있는 도전이라고 부른다.
“이 도전이 여기서 끝난다면 저만의 도전이 되겠죠. 도전이 도전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볼 생각입니다.”

웹서비스 업체 창업한 강지호(경희대 국제경영학부 휴학)
“고등학교 때부터 창업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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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하나를 만들어내는 건 사업이 아니죠. 이걸 해서 안 되면 다른 아이템으로 바꿔가며 끈기를 갖고 해나가는 게 진짜 창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지호(26)씨는 꿈이 사업가였다. 그가 처음 창업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웹디자인을 따로 공부하던 강씨는 TV 뉴스에서 고등학교 2학년 벤처사업가를 보고서는 물어물어 함께 일을 하자고 연락했지만 거절 당했다.

강씨는 “한 살 차이인데 저렇게 자기 사업을 하는데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며 “2001년 6월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업자등록을 내고 명함도 파 1년 정도 웹디자인 사업을 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강씨는 대학 입학 후에도 창업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2007년 대학생 공모전 지원시스템을 만들었다. 또 실패했다. 이번에는 그도 고민했다. 다시 실패하면 어쩌나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초 친구 6명과 베타스튜디오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휴팟’이라는 프로젝트 관리 웹서비스였다. 개발을 시작했지만 2009년 2월께 다른 친구들은 다 그만두고 친구 김환(광운대 경영학부·26)씨만 남았다.

기존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친목 도모만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에서 탈피해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인맥을 만들고, 실제로 해당 사이트 안에서 프로젝트에 유용한 콘텐트를 활용하도록 하는 서비스였다.

개발에 들어간 1억원은 대부분 펀딩을 받았다. 창업진흥원에서 중기청창업지원금으로 2700만원, 한국콘텐츠진흥원의 1인 창조기업 지원 사업에 뽑혀 4600만원, 서울시의 2030 창업 프로젝트로 월 70만원씩 12개월 총 840만원 지원을 받았다.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은 평소 창업모임에서 알게 된 솔빅스테크놀로지에서 마련해줬다.

‘휴팟’은 여러 차례 실패 끝에 2009년 5월 개발에 성공했고 9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강씨는 “우리 힘은 3분의 1이고 나머지는 외부의 도움이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특히 창업자금 전액을 지원받았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아직 한국의 창업지원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사업하다가 위기가 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한마디로 사업계획서는 변수고 사업하는 수완이 상수여야죠. 하지만 정부에서 창업지원을 평가할 때는 사업역량을 10%밖에 반영하지 않아요.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또래 친구들에게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다른 친구들이 당장 취업할 걱정을 하는 건 사회에서 주어진 틀에서 사는 거고 그 틀을 벗어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강씨는 “누구나 하고 싶은 게 있지만 그걸 밀고 나가지 못하는 건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지레짐작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봉사활동 매니어 유선경(서강대 국어국문과 4학년)
“50대엔 사회공헌 컨설팅 회사 차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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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경(24)씨는 기자가 꿈이다. 언론사 입사시험 준비로 책과 씨름하는 다른 대학생들과 달리 유씨는 언론사 입사시험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사회활동에 힘을 쏟는다.

그는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방송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50대에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컨설팅 회사를 차리고 싶단다. 유씨는 교내 영어잡지를 만드는 서강헤럴드에서 편집장까지 지낸 실력파다.

유씨가 사회공헌활동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아프리카 초원학교』를 쓴 구혜경 작가와의 인터뷰였다. 구혜경 작가가 아이들을 데리고 탄자니아에서 6개월 동안 살았던 얘기를 들으면서 인종 문제,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그 영향인지 ‘서강헤럴드’의 공식 임기를 마치고 그는 봉사활동을 선택했다.

2008년 가을이었다. 마포구 합정동의 저소득 소외계층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마리스타 지역아동센터’ 교육봉사활동이었다. 처음 만난 아이들이 대뜸 “선생님도 빨리 그만두실 거죠?”라고 물을 때는 당황하기도 했다. 2009년 한 해를 온전히 이 교육봉사활동에 쏟았다. 기자 되겠다고 책 한 권 더 보는 것보다 사회에 직접 몸을 부딪쳐보고 싶어서였다.

단순히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데 그치지도 않았다. 직접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회장, 단장을 맡아 바삐 지냈다. 서강대 학생들이 교내 청소를 직접 하자는 ‘서강 클린 캠페인’ 행사는 기획에도 참가했다. 그가 생각하는 봉사란 어떤 것일까?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기계발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때가 가장 만족스럽잖아요.”

한정연 기자, 함현근 인턴기자·ja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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