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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미술품 전문 경매사 ‘옥션 단’ 여는 김영복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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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90년 통문관을 나와 고서적 전문책방 ‘문우(文友)서림’을 냈던 김영복씨는 “경매 일에 전 념하기 위해 당분간 문우서림은 휴업한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일요일 오전 KBS1 ‘TV쇼 진품명품’으로 안방을 찾는 이 남자의 첫 인상이 서글서글하다. 고서(古書) 감정위원이지만 한국 전통문화에 사통오달 두루 밝은 김영복(56)씨다. 서울 인사동을 좀 기웃거린 이라면 더더욱 김씨 얼굴이 낯익을 터. 1970년대 초 고서점업계의 터줏대감 격이던 ‘통문관’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뒤 인사동을 벗어난 적이 없으니 그는 우리 문화의 늪에 뼈를 묻은 셈이다.

“인사동의 향취와 매력에 한번 마음을 빼앗기면 빠져나가기가 힘들죠. 70~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통문관을 연락사무소처럼 여겨 각 분야의 대가들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던 것도 복이었고요. 책장사 제대로 하려면 손님보다 공부를 열 배는 더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셔서 하루 한 권꼴로 한적(漢籍)을 파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인사동과 일생을 함께 해온 김영복씨가 날로 빛이 바래는 인사동 살리기에 나섰다. 그는 마음 통하는 친구 스무 명과 공동 출자해 이달 말 인사동 들머리 동일빌딩 3층에 전통미술품 전문 경매회사 ‘(주)옥션 단’(02-730-5408, www.auctiondan.co.kr)을 연다. ‘단’은 우리나라를 뜻하는 박달나무 단(檀)이면서, 옛 것을 꿰뚫어 새 날을 여는 아침 단(旦)이다. 또한 우리말의 단단하다와 달콤하다는 의미의 단이다. 김영복씨의 호도 ‘단군을 연구하는 조그만 봉우리’라는 뜻의 ‘단잠(檀岑)’이니 ‘단’이 여러 겹 겹쳤다.

“현대미술품에 비해 고미술품은 그 동안 제 살 깎아먹는 미련한 짓을 해왔어요. 똑같은 고서적 한 권이 이 집에선 100만원을 부르는데 또 다른 집에 가면 300만원이 된단 말이죠. 그러니 손님들이 고개를 갸웃 젓게 마련이죠. ‘옥션 단’은 인사동 외부 고객에게 믿음을 주고 내부 동료 사이에 정화의 구실을 하겠다는 각오입니다. 정직한 거래로 유통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죠.”

김 대표는 특히 “한문을 몰라 고서적의 가치를 모르고 전통미술품을 접할 기회가 없어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젊은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소정 경비를 받고 고서를 번역해주거나 고서와 고미술품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연구·감상·감정의 객관적 자료를 제공하는 것도 ‘옥션 단’이 손꼽는 역할이다. 저평가됐거나 잊혀진 작가를 발굴해 전시회를 열고 경매뉴스레터 발간과 출판에도 힘을 나눌 생각이다.

“굳이 주식시장 용어로 비유하자면 고미술품은 우량주이고 현대미술품은 위험성이 큰 주식이라 할 수 있죠. 고미술은 긴 세월을 살아남아 가치가 이미 평가됐지만 현대미술품은 이제야 그런 과정에 들어선 것이니까요. 미술품에 투자하고 싶은 젊은 컬렉터들이 고서와 고미술에 안목을 키운다면 훨씬 고부가가치 수집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분들을 ‘옥션 단’이 돕겠다는 얘기지요.”

김영복씨의 40년 인사동 지인들이 저마다 돕겠다고 나선 것도 ‘옥션 단’의 자랑이다. 동국대 이종찬 박사, 시습학사의 이충구 박사, 가회고문서연구소의 하영휘 박사, 한학자 고재식씨 등 이 분야에서 손꼽는 전문가들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준다.

첫 번째 경매는 3월 중순에 열 예정이라고 밝힌 김 대표는 “우리 눈을 번쩍 뜨게 해줄 질 높은 작품을 엄선해 석 달에 한 번 정도 고미술 애호가와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인사동 나들이 나온 김에 구경 오시겠다는 모든 분들께는 문화사랑방 구실도 하겠다고 밝혔다.

“체육진흥회는 있는데 왜 한국학진흥회는 없는가, 제가 늘 통탄했었는데 그 말에 이제야 좀 책임을 지게 돼나 봅니다.”  

정재숙 선임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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