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고유가 대책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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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하루 80만배럴 증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고유가가 계속되자 생산국과 주요 소비국들간 '네 탓'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유가 시대가 장기화하리란 전망이 확산하면서 각국은 유류세 인하, 에너지 절약 캠페인, 대체 에너지 개발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 고유가 책임 소재 공방=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 소비국들은 공급 부족이 주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세계경제가 성장세를 보이면서 에너지 소비가 급증했는데도 OPEC가 지난해 4월부터 감산에 들어가 유가 폭등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OPEC도 어느 정도 이를 인정, 14일 "세계 석유시장에 대한 책임을 상당 부분 인식하고 있다" 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OPEC 내의 이란.이라크 등 증산 반대파는 "공급은 이 정도면 충분하며, 고유가의 진짜 이유는 소비국의 과도한 세금, 석유사들의 불합리한 공급과정, 원유 투기, 심리적 불안감" 이라고 반박한다.

알리 로드리게스 OPEC 의장은 "유럽의 석유 매출액 중 16%만 산유국의 몫이며 68%는 정부 세금으로, 나머지는 정유회사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고 주장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 1분기 유럽 각국의 유류세는 무연가솔린.디젤유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OPEC는 알제리.리비아.나이지리아.카타르 등 상당수 산유국들의 증산 능력이 정제시설 부족 등으로 한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이 경제제재 차원에서 이란.이라크.리비아의 석유산업 투자를 오랫동안 억제한 것이 유가 폭등의 한 원인이란 지적도 있다.

하루 2백10만배럴을 수출하는 이라크의 경우 정상적으로 투자가 이뤄졌다면 사우디아라비아(7백20만배럴)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형 석유사들이 경영합리화 차원에서 비축 물량을 크게 줄여 가격 완충장치가 없어졌고, 유조선 수송비가 크게 오른 데다가 국제 현물투기자금에 의한 가수요 등도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 각국의 대책=미국 정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유류세 인상 등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정책은 시행할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OPEC에 계속 증산 압력을 넣고 5억7천만배럴 규모의 전략비축유(SPR)의 방출을 검토하는 방향으로 대처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열효율 높은 건축자재 개발과 자동차 연비 향상 등을 촉구하고 에너지 절약 기술에 대한 세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도 미국과 함께 OPEC에 증산 압력을 가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차량용 유류세 인하, 원유 의존산업 축소 등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벨기에 정부는 도로세.보험료 등을 인하했다. 독일 정부는 저소득층에 지급하는 난방연료비 보조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가용 대신 자전거.킥보드.롤러 블레이드 등을 이용하거나 아예 걸어서 출퇴근을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태국 정부는 농.어민과 대중교통 업체에 총 1억바트의 유류 보조금을 지급하고 오는 25일을 '차없는 날' 로 지정하는 등 에너지 절약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중국은 내년 3월 발표할 제10차 5개년계획(2001-2005년)에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의 원유 비축 및 에너지 절약 방안을 포함할 예정이다.

국제 유가 수준에 따라 국내 유가를 조정하는 유가연동제도 자본주의 국가 수준으로 강화할 계획이며 대체에너지 및 해외유전 개발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정유사들이 채산성 악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조만간 유가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나 아직까지 정부 차원의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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