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수성구 '민원배심원제' 첫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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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주택가 러브호텔.위험시설 등에 대한 주민들의 집단민원을 해결하는 한 대안으로 대구시 수성구가 시행하고 있는 '민원배심원제' 가 주목받고 있다.

대구시 수성구는 건축허가 등 적법한 행정행위에 대해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갈등이 장기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3월 전국 최초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집단민원이 발생하면 관계전문가.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주민대표와 사업주 쌍방의 의견을 들은 뒤 건축허가를 취소하거나 타협안을 찾아준다.

수성구는 현재 건축.환경.교통 분야의 전문가, 시민, 직능단체, 변호사 등 30여명으로 배심원 풀(pool)을 만들어 놓고 사안이 생기면 이 중에서 10명을 선정해 배심원단을 구성한다.

배심에 앞서 배심원으로 참가한 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이뤄진 결정은 민법상 합의나 화의의 효력을 갖게 된다" 는 점을 주지시킨다. 추후 당사자들이 합의를 뒤집고 법적 분쟁을 벌일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지금까지 수성구에서 민원배심원의 심의를 받은 민원은 9건. 원룸주택이 7건, 러브호텔과 LPG판매소가 1건씩으로 모두 해결책을 찾았다. LPG판매소는 허가 불가능 결론이 내려졌고, 나머지는 '조건부 허가' 였다.

인근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집단 입주 때문에 주민들이 강력 반대해왔던 원룸주택은 ▶건물주의 직접 거주▶입주자 선별▶충분한 주차장 확보 등 주민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조건으로 건축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러브호텔에 대해서도 ▶유리창에 가림막을 설치하고▶인근 대지를 사들여 주택가와의 거리를 확보할 것 등이 조건으로 붙었다.

건축주들도 허가가 취소되거나 까다로운 조건을 단 허가 결정이 내려져도 어차피 주민동의 없이는 사업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하고는 순순히 동의했다.

'대구의 강남' 으로 불리는 수성구는 최근 몇년 사이 개발 바람을 타고 술집.음식점.러브호텔.원룸주택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주민들의 민원도 줄을 이었던 곳. 하지만 민원배심원제 도입 이후 수성구에서 주민집단행동은 자취를 감췄다.

구청측은 법적으론 하자가 없더라도 민원이 예상되는 건축물의 허가신청이 들어오면 건축예정지에 1주일간 그 내용을 게시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민원배심원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김규택(金圭澤)수성구청장은 "민원배심원제가 법적 기구는 아니지만 극단으로 치닫기 쉬운 집단민원에 대해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타협점을 찾아낸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고 말했다.

수성구의 민원배심원제는 그동안 고양.안양.안동.여수 등 기초단체 10여곳이 관련자료를 수집해 가 조만간 타 지역으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대구〓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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