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5공 전두환씨가 비웃는 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두환(全斗煥), 그가 누구인가. 12.12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5공화국 통치자이자 부끄러운 군부 장기 집권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그의 압제정치 아래 숱한 사람이 고생했고, 역사 흐름을 거슬러 민주주의는 저만치 후퇴해야 했다. 바로 그 군부 통치의 상징인 全씨가 오늘날의 정치판을 가리키며 "이게 민주주의냐" 고 묻고 있다.

'타도 군부 독재' 를 외치고 이땅에 민주화를 이룩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던 인사들을 향해 '당신들이 주장한 민주주의란 게 고작 이거냐' 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정치가 과거 독재자로부터 비웃음을 살 정도로 전락해버린 것은 정치권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무슨 통과의례처럼 걸핏하면 전직 대통령을 찾아다니는 정치인들의 행동이 이런 망신을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표에 유임됐다고 또 전직 대통령의 순방 행차에 나선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에게 全전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이 평생 민주주의에 몸바친 민주투사들이라 민주주의가 뭔지 보여줄 줄 알았는데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똑같다" 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그가 그러한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따지고 싶지 않다. 인권과 언론 자유, 그리고 정치 자체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민주화' 됐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全씨의 지적에 낯이 화끈거리는 것은 현 정치판의 행태가 그의 비아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야의 극한 대결과 저급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은 '그때(5공시절)와 다른 게 뭐냐' 는 全씨의 당당한 질문에 오히려 동조하지 않을까. 최근 들어 정치는 더욱 뒷걸음치는 양상이다. 구태 정치의 표본으로 꼽히던 날치기 처리와 가투(街鬪)정치가 옛 모습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정기국회 회기 중인데도 의사당은 텅 비어 있고, 산적한 민생 법안들은 정치투쟁의 뒷전에 묻혀 있다. 정치 복원의 1차 책임이 있는 집권 민주당은 '국회법대로' 라는 억지논리만 되뇌고 있으니 정국 수습 능력을 상실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다.

국회 제1당 한나라당 역시 새로운 비전 제시나 탄력있는 대응보다는 길거리에서의 동원정치, 벼랑끝 정치로만 내닫고 있다.

민주화 운동에 매진할 때 소리 높여 외치던 관용과 대화, 타협과 상생의 구호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작금의 정치 실종 사태는 여야 각 당 지도부의 경직성과 권위주의적 행태에 큰 요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全씨는 여야가 화합하려면 힘있는 사람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여당의 양보와 야당의 관용을 촉구한 것이다. 그것이 정치 복원의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여야 모두 全씨의 말에서 교훈을 찾아야 하는 이 정치 현실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