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환경호르몬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환경호르몬 재앙이 국내에서도 현실로 나타나는 조짐을 보여 사뭇 충격적이다.

이 환경호르몬이 놀랍게도 물고기 등의 암수를 바꾸는가 하면, 공기와 물.흙을 오염시키고 있음이 환경부 조사 결과 드러났다.

환경호르몬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국내에서도 생태계의 조화와 질서를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물고기.개구리의 암수가 뒤바뀌는 현상이 강원도.경남 등에서 속속 진행되고 있다.

31곳을 골라 한 표본조사이니 전국 곳곳에서 암컷이 수컷의 성기와 수정관을 동시에 갖는 '임포섹스' 등 현상이 상당 수준 진척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환경호르몬의 하나인 다이옥신의 공기 속 농도가 일본보다 높은 곳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과 흙도 당장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조만간 위험 수위에 이를 것으로 우려된다.

환경호르몬의 생태계 교란은 인류의 재난을 예고하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인류의 멸종 위기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극단론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환경호르몬이 남성의 정자 수를 크게 줄어들게 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945년에 태어나 30세가 된 남성의 정자 수는 ㎖당 1억2천만개였으나, 62년에 태어나 30세가 된 남성의 정자 수는 5천1백만개로 줄었다.

이런 정자 감소 추세에다 ㎖당 정자 수가 2천만개 이하로 떨어지면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인류의 장래를 걱정하는 소리도 만만찮다.

환경호르몬은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되고 인체의 면역기능을 저하시키며 각종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

또 동성애적 경향을 갖도록 해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가로막는 등 여러가지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환경호르몬'이 문제는 이제 오존층 파괴.지구 온난화 문제와 함께 세계 3대 환경문제로 꼽히고 있다.

이제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 철저한 환경호르몬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물론 호들갑을 떨며 허겁지겁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차근차근 준비하되 환경호르몬에 대한 종합적.체계적인 연구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환경호르몬이 어떻게 합성.방출되고, 어떻게 인체의 내분비계를 교란하는지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또 현실적으로 가능한 환경호르몬의 규제 기준치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분류.등재한 67종의 환경호르몬 중 우리와 무관한 것을 뺀 51종 가운데 42종만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빠진 9종 중 음료수 캔 코팅제나 플라스틱 가소제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환경호르몬도 정밀 검토해 필요한 것은 모두 규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법을 만들고 적절한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호르몬이 이제 우리의 문제로 닥쳐 왔음을 인식하는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