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리본 프로세스’ 매장에서 포즈를 취한 강승현.
글=강승민 기자
숱한 디자이너가 혜성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뉴욕에서 가게 하나 연 것이 무슨 대수일까. 하지만 ‘수퍼모델 강승현’의 움직임에 현지 반응이 심상찮다. 매장 문을 열자마자 전 세계의 패션 정보를 다루는 웹사이트 ‘스타일닷컴’은 그 소식을 알렸고, 미국의 패션잡지 ‘틴 보그’는 3월호에서 ‘새로운 패션디자이너’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실을 예정이다. 연말연시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서울에 온 그를 만나 브랜드 컨셉트와 향후 계획을 물었다.
Q ‘리본 프로세스’ 제품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브랜드 이름에 ‘재생’ 혹은 ‘새롭게 태어난’이란 뜻의 ‘리본(reborn)’을 쓴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빈티지 의상(8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낡고 오래된 제품)을 요즘 유행에 맞게 새로 고친 옷들을 주로 선보인다. 그러니까 이 매장에서 구입하는 제품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옷’이다.”
Q ‘빈티지’ 의상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빈티지 또는 빈티지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다들 관심이 많다. 그런데 정작 물건을 구입할 때는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또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이 빈티지 제품을 더 쉽게 접하고 멋지게 소화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강승현이 ‘파워 숄더’재킷 소매를 떼고 허리선을 잡아 긴 조끼형 외투로 변신시킨 ‘리본 프로세스’ 옷을 입었다.
“패션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빈티지 의상을 있는 그대로 입긴 힘들다.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진 모양새라 잘못하면 촌스럽게 보일 수 있다. 이런 단점을 없애고 장점은 더 부각시키기 위해 현대적 감각을 더하는 작업도 충분히 ‘새로운 디자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Q 빈티지 제품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란.
“빈티지 매니어는 ‘오래된 옛것에서 느낄 수 있는 향수’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매 시즌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의상은 누구라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독특한 ‘나만의 것’을 원한다. 실제로 빈티지 의상은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특별하다. 하지만 깃이 너무 넓거나 품이 과하게 넉넉한 등 요즘의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재창조’ 작업이 필요하다. 빈티지 느낌이 살 수 있도록 소재의 낡은 듯한 분위기는 그대로 두고 허리선을 요즘 감각에 맞게 날렵하게 재단한다든가, 깃의 모양을 바꾸거나, 모피나 가죽 소재 또는 단추를 새로 덧붙여 장식한다.”
Q 무수히 많은 패션매장이 존재하는 뉴욕에서 시장성이 있을까.
“ 뉴욕은 패션에 관해서라면 없는 게 없는 곳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빈티지 의상 자체를 취급하는 매장은 많지만 ‘리본 프로세스’처럼 새로 디자인해 파는 곳은 없더라.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는데 현지 언론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이런 컨셉트 자체가 새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
Q ‘재활용’이라는 주제는 환경운동과도 연관이 깊다.
“패션 자체가 소비다. 처음부터 그런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옷을 많이 입어 본 모델로서 어떡하면 더 멋지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결과 낡은 옛것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 매장을 꾸밀 때 빈티지 느낌에 맞게 오래된 나무문을 재활용해 옷걸이와 거울 등을 꾸민 일이 ‘재활용’의 의미를 생각한 정도랄까.”
Q 빈티지 의상을 잘 소화하려면.
“디자인 자체에서 시대의 특징을 느낄 수 있는 게 빈티지 의상의 매력이다. 그 장점을 잘 살리는 요령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80년대는 여성들 사이에서 ‘파워 슈트(남성 정장 재킷처럼 두꺼운 패드를 넣어 어깨를 각지게 만든 것)’가 유행했다. 대기업에서 여성 간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옷에서도 ‘여성 파워’를 표현하는 게 인기였다. 때문에 이 시대의 의상을 고른다면 과장된 어깨라인이 잘 살아 있는 재킷을 고르는 게 좋다. 그리고 이것을 그대로 입는 게 아니라 각진 어깨는 그대로 두고 소매만 떼어내 조끼 모양의 외투로 활용하면 멋진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각진 어깨선과는 반대로 허리선을 벨트로 꼭 조이는 것도 감각 있는 연출법이다. 빈티지 의상은 장식도 눈여겨봐야 한다. 리본이나 레이스, 비즈(장식 구슬) 등이 요란하게 들어간 옷을 살 때 이것을 그대로 둘지 아니면 좀 덜어내 입을 것인지 계획이 서 있어야 한다. 빈티지 의상을 제일 멋지게 소화하는 방법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