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수퍼모델 강승현, 디자이너 강승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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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뉴욕 ‘리본 프로세스’ 매장에서 포즈를 취한 강승현.

수퍼모델 강승현(23)이 패션디자이너로 데뷔했다. 그는 2008년 1월 미국의 유명 모델에이전시 포드사가 주최한 ‘포드 세계 수퍼모델 대회’ 1위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1981년 대회가 생긴 이래 첫 동양인 우승자였기 때문이다. 우승 직후 줄곧 뉴욕에서 수퍼모델로 활약해 온 그가 지난해 12월 23일 미국 뉴욕 소호 지역에 ‘리본 프로세스’라는 이름의 패션매장을 열었다.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전시·판매하기 위해서다.

글=강승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숱한 디자이너가 혜성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뉴욕에서 가게 하나 연 것이 무슨 대수일까. 하지만 ‘수퍼모델 강승현’의 움직임에 현지 반응이 심상찮다. 매장 문을 열자마자 전 세계의 패션 정보를 다루는 웹사이트 ‘스타일닷컴’은 그 소식을 알렸고, 미국의 패션잡지 ‘틴 보그’는 3월호에서 ‘새로운 패션디자이너’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실을 예정이다. 연말연시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서울에 온 그를 만나 브랜드 컨셉트와 향후 계획을 물었다.

Q ‘리본 프로세스’ 제품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브랜드 이름에 ‘재생’ 혹은 ‘새롭게 태어난’이란 뜻의 ‘리본(reborn)’을 쓴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빈티지 의상(8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낡고 오래된 제품)을 요즘 유행에 맞게 새로 고친 옷들을 주로 선보인다. 그러니까 이 매장에서 구입하는 제품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옷’이다.”

Q ‘빈티지’ 의상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빈티지 또는 빈티지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다들 관심이 많다. 그런데 정작 물건을 구입할 때는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또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이 빈티지 제품을 더 쉽게 접하고 멋지게 소화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강승현이 ‘파워 숄더’재킷 소매를 떼고 허리선을 잡아 긴 조끼형 외투로 변신시킨 ‘리본 프로세스’ 옷을 입었다.

Q 엄밀히 말하면 원래 있던 옷을 리폼(개조)하는 것이다. 이것도 ‘디자인’이라 할 수 있을까.

“패션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빈티지 의상을 있는 그대로 입긴 힘들다.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진 모양새라 잘못하면 촌스럽게 보일 수 있다. 이런 단점을 없애고 장점은 더 부각시키기 위해 현대적 감각을 더하는 작업도 충분히 ‘새로운 디자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Q 빈티지 제품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란.

“빈티지 매니어는 ‘오래된 옛것에서 느낄 수 있는 향수’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매 시즌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의상은 누구라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독특한 ‘나만의 것’을 원한다. 실제로 빈티지 의상은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특별하다. 하지만 깃이 너무 넓거나 품이 과하게 넉넉한 등 요즘의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재창조’ 작업이 필요하다. 빈티지 느낌이 살 수 있도록 소재의 낡은 듯한 분위기는 그대로 두고 허리선을 요즘 감각에 맞게 날렵하게 재단한다든가, 깃의 모양을 바꾸거나, 모피나 가죽 소재 또는 단추를 새로 덧붙여 장식한다.”

Q 무수히 많은 패션매장이 존재하는 뉴욕에서 시장성이 있을까.

“ 뉴욕은 패션에 관해서라면 없는 게 없는 곳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빈티지 의상 자체를 취급하는 매장은 많지만 ‘리본 프로세스’처럼 새로 디자인해 파는 곳은 없더라.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는데 현지 언론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이런 컨셉트 자체가 새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

Q ‘재활용’이라는 주제는 환경운동과도 연관이 깊다.

“패션 자체가 소비다. 처음부터 그런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옷을 많이 입어 본 모델로서 어떡하면 더 멋지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결과 낡은 옛것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 매장을 꾸밀 때 빈티지 느낌에 맞게 오래된 나무문을 재활용해 옷걸이와 거울 등을 꾸민 일이 ‘재활용’의 의미를 생각한 정도랄까.”

Q 빈티지 의상을 잘 소화하려면.

“디자인 자체에서 시대의 특징을 느낄 수 있는 게 빈티지 의상의 매력이다. 그 장점을 잘 살리는 요령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80년대는 여성들 사이에서 ‘파워 슈트(남성 정장 재킷처럼 두꺼운 패드를 넣어 어깨를 각지게 만든 것)’가 유행했다. 대기업에서 여성 간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옷에서도 ‘여성 파워’를 표현하는 게 인기였다. 때문에 이 시대의 의상을 고른다면 과장된 어깨라인이 잘 살아 있는 재킷을 고르는 게 좋다. 그리고 이것을 그대로 입는 게 아니라 각진 어깨는 그대로 두고 소매만 떼어내 조끼 모양의 외투로 활용하면 멋진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각진 어깨선과는 반대로 허리선을 벨트로 꼭 조이는 것도 감각 있는 연출법이다. 빈티지 의상은 장식도 눈여겨봐야 한다. 리본이나 레이스, 비즈(장식 구슬) 등이 요란하게 들어간 옷을 살 때 이것을 그대로 둘지 아니면 좀 덜어내 입을 것인지 계획이 서 있어야 한다. 빈티지 의상을 제일 멋지게 소화하는 방법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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