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준관 '쑥부쟁이 피었구나, 언덕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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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쑥부쟁이 피었구나, 언덕에

쑥부쟁이야, 너를 보니

모두들 소식이 궁금하구나.

늙은 어머니의 마른 젖꼭지를 파고들던

달빛은 잘 있는가.

전봇대에 오줌을 갈기던 개는

달을 보고 걸걸걸 잘 짖어대는가.

해거리를 하는 감나무에

올해는 유난히 감이 많이 열렸는가.

볼때기에 저녁 밥풀을 잔뜩 묻히고 나와

아아아아 산을 향해

제 친구를 부르던 까까머리 소년은

잘 있는가.

- 이준관(51) '쑥부쟁이 피었구나, 언덕에' 중

장마도 물러가고 더위도 한풀 꺾이면 고향 바람은 풀익는 냄새를 실어 온다. 길 언덕에 피는 쑥부쟁이 작은 꽃망울 속에서 떠올려지는 어린 날은 아름답기만 하다. 어머니의 젖꼭지를 파고 들던 달빛, 해거리 하는 감나무. 볼때기에 밥풀을 묻힌 까까머리....

돌아갈 수 없는 그날을 향해 아아아아 부르는 소리가 가슴을 파고 든다. 들꽃 하나에 실어 놓은 고향이 둥실 구름으로 떠가고 있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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