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 취임 2년…대선 차기주자 굳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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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31일 취임 2주년을 맞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 정권을 거칠게 성토한 것만큼이나 그의 지난 2년은 격랑을 헤쳐오면서 자신의 위상과 리더십을 다져온 기간이었다.

李총재의 핵심측근은 지난 2년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섰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견제를 막아냈으며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와의 관계정립을 모색했던 시기" 라고 설명했다.

요즘 李총재는 4당체제였던 1989년 자신이 중앙선관위원장이었을 때 노태우(盧泰愚)대통령과 3金씨가 주도한 선거전(동해시.영등포을 재선거)에 대항해 선관위의 매서운 칼을 빼들었던 기억을 얘기하곤 한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향해 달려든 격" 이었다며 "그러나 이는 꼭 승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에 굴복할 수 없는 본질적 근성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주변에선 李총재의 '근성' 이 98년 8.31 전당대회에서 총재로 취임한 직후 세풍.총풍수사, 여권의 정계개편 시도에 대해 당을 보호하기 위해 벌인 투쟁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고 했다.

그는 4.13총선에서 양당구도 아래 초유의 야대(野大)상황을 만들어냈다. 헌정사상 가장 거대한 야당의 지도자가 됐으며 영남을 중심으로한 반(反)DJ 민심의 한복판에 서 있다.

측근들은 "합리와 소신의 정치를 새 정치의 리더십으로 인상깊게 다듬어 왔다" 고 주장했다.

때문에 측근들 사이에선 "李총재가 2002년 대권에 가장 근접한 정치인" 이라는 얘기가 스스럼없이 나오고 있다. 실제 李총재에 대항할 만한 야당의 차기 주자들은 뚜렷하지 않다. 물밑에선 李총재의 차기집권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그룹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그러나 그런 위상만큼이나 그에게 놓인 과제도 여러 가지다. 신남북시대를 이끌 리더십이다. 급격히 변하는 남북관계의 상황관리에서 그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총재실의 한 관계자는 "대북정보의 부재(不在), 한반도 4강의 변화 속에 당의 대응이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당관리에서 '독주(獨走)' 한다는 비판도 여전히 부담이다.

이날 회견에서도 李총재가 집중적으로 받은 질문은 "정기국회 불참.거리시위 같은 것이 3金식 정치와 뭐가 다른가" "수권.정책 정당으로서 미흡한 것 아니냐" 는 내용이었다.

당내 비주류의 대표격인 김덕룡(金德龍)의원은 "이회창 총재가 김대중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스스로 그와 닮아가고 있다" 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강공으로만 일관하는 지금의 정국관리 행태에 대한 일정부분의 부담이 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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