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한국경제 살아나니 원화값 상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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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1일 서울 외환 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가 7거래일째 상승해 1110원대에 진입했다. 이날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딜러들이 거래를 마감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연초부터 원화값의 급등세가 심상찮다. 11일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달러당 10.7원 오른 1119.8원으로 장을 마쳤다.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이날까지 7거래일 연속 강세다. 원화값은 2주 만에 달러당 50.4원이나 뛰었다.

원화값의 급격한 변동은 경제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운다. 원화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달러가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한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깔려 있다.

여기까진 빛이다. 하지만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원화값의 강세는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에는 독이 될 수 있다. 제품을 수출해 들여온 달러를 원화로 환산하면 수익이 준다. 또 원화로 매긴 값을 달러로 환산하면 물건 값이 비싸져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이 낮아진다. 매출의 75~80%가 수출인 현대·기아차는 원화값이 달러당 10원 오르면 한 해 매출이 2000억원(현대차 1200억원, 기아차 800억원) 준다.

외환당국의 고민은 그래서 깊어진다. 원화값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데 지금처럼 한쪽으로 쏠린다면 당국은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이란 명분으로 시장에 개입할지 따져봐야 하는 입장이 된다. 사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올해엔 원화가치가 지난해보다 상승할 것이라는 데 한목소리를 낸다.

안팎으로 원화강세가 될 수밖에 없는 요인이 널렸기 때문이다. 우선 국제시장에서 달러 약세가 지속하고 있다.

안에서는 지난해보다 규모는 줄겠지만 올해에도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한국은행 예측치 170억 달러). 한국 증시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리는 것도 시장에 달러가 넘치는 원인이다.

문제는 속도다. 골드먼삭스, JP모건 같은 외국 금융사들은 원화값을 올 상반기에 달러당 1120~1150원, 하반기에 1060~1090원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벌써 1110원대에 들어섰다.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다.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홍승모 차장은 “대기업의 실적이 아직은 좋은 데다 저금리까지 이어지면서 외국투자자들이 한국 원화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수출기업의 걱정은 그래서 커진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원화값은 현재까지 3.82% 올랐다. 반면 이 기간에 엔화는 0.04%, 대만달러는 0.9% 오르는 데 그쳤다. 일본과 대만 기업에 비해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더 떨어졌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해외공장 설립으로 과거에 비해 환율의 영향이 많이 줄긴 했지만 원화가치가 너무 오르면 좋을 건 없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결제 수단에서 달러의 비중을 줄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결제수단으로 유로 등 다른 통화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은 원칙적인 언급만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외환당국 관계자는 “경제 기초여건이나 수급에 따른 시장의 움직임은 존중하지만 투기적 의도가 깔렸거나 쏠림에 의한 급변동이 생긴다면 미세 조정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잘못 개입하면 나라 곳간만 축낼 뿐 성과를 거두지 못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고민이 깊어진다.

원화강세가 불가피하다면 이 기회에 기업들이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선임연구원은 “경제가 회복되면서 원화값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체질 개선으로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윤·김선하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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