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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예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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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흡사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격이다. 수많은 여행객 중 테러범을 골라내는 일 말이다. 손으로 일일이 은밀한 부위까지 더듬고 첨단 알몸투시기를 설치한대도 효과 대비 비용만 클 게 뻔하다. ‘신발 폭탄’ 이후 냄새나는 구두까지 벗겨대니 이번엔 ‘속옷 폭탄’이 등장하지 않았나. 방패가 견고해지면 덩달아 창도 진화하는 법이다.

일찌감치 테러범이 될 만한 싹을 찾아 잘라내는 게 중요한 이유다. 남다른 금융거래 패턴이 단서가 될 수 있단다. 9·11 테러범 19명의 데이터를 추적해 보니 ▶한번에 거액을 넣어둔 뒤 찔끔찔끔 빼내고 ▶공과금, 자동차 할부금 등의 이체가 없으며 ▶외국 은행과 돈을 정기적으로 주고받는 따위의 특징이 드러났다. 금요일 오후엔 현금인출기를 이용 안 하고 생명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도 잠재적 테러범들의 공통점이었다. 무슬림들은 의무적으로 금요 예배를 드려야 하고, 어차피 자살(폭탄 테러)을 하면 보험금을 탈 수 없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런 정보를 토대로 촘촘히 그물망을 짜봤자 구멍은 있다. 돈 몇 푼 날리는 셈치고 보험에 들면 될 테니 말이다(스티븐 레빗 등, 『슈퍼괴짜경제학』).

이처럼 테러범에 대한 예측은 빗나가기 일쑤다. 못살고 못 배운 이들이 주축일 것 같지만 엘리트도 많다. 나이지리아 명문가 자제인 ‘속옷 테러’ 미수범뿐 아니다. 팔레스타인 자폭 테러범 중 빈곤층 출신이 16%에 불과하고(전체는 30%), 고졸 학력 이상이 60%를 넘는다(전체는 15%)는 조사 결과도 있다. 왜 그럴까. “테러범이 될 가능성이 큰 집단은 투표할 가능성이 큰 집단과 비슷하다”는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의 말이 힌트를 준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그들을 테러로 이끈다는 것이다. 저 혼자 잘살며 빈곤의 나락에 빠진 이웃을 두고 볼 수 없단 얘기다.

그 때문에 서구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슬람 국가들이 발전하도록 돕는 게 최선의 테러 예방책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군대를 더 보내봤자 테러의 원인만 키운다는 거다. 동포 미국인들에게 ‘역적’ 소리를 들으며 시민운동가 그레그 모르텐슨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현대식 학교 131개를 세운 것도 그래서다. 그 땅의 아이들이 극단적 교리의 속박에서 벗어나 교사도 사업가도 되길, 장차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주역이 되길 바라는 거다.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돼야 한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