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 칼럼] 정치아닌 정치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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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못 주고 여전히 좌절만 안겨주고 있다. 4.13총선 후 여야는 이구동성으로 건설적.상생적 협력관계와 대화정치를 다짐했으나 말잔치로 끝났다.

총선 직후 김대중대통령은 지난 2년간의 정치는 정치도 아니었다고 회고했는데 임기의 반을 넘긴 지금도 그 말은 그대로 유효하다.

소리를 내면서도 어렵사리 굴러가는가 싶던 국회가 여권의 느닷없는 국회법개정안 날치기 처리로 달포가 넘게 거의 공전상태다.

8월 임시국회는 말할 것도 없고 9월 정기국회마저 파행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야당은 날치기처리의 백지화와 사과를 국회 정상화의 전제로 내걸고 있다고 한다. 날치기의 백지화와 사과 요구는 백번 당연하나 그렇다고 언제까지 국회를 볼모로 삼을 셈인가. 이러다 2년 후 지난 5년간의 정치는 정치도 아니었다는 얘기가 다시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정치가 꾀죄죄하기는 대 국민-여야간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당내 정치도 마찬가지다.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 경선(競選)을 둘러싸고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제약이 너무 가해지는 것 같다.

이번 새천년민주당의 전당대회는 대통령후보지명대회도 아니고 총재를 경선하는 대회도 아니니 '대권.당권과 무관한 대회' 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집권당의 전당대회, 그것도 지도부를 구성하는 최고위원을 경선하는 대회라면 장래의 대권과 당권의 향방이 가늠되는 행사가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최고위원에 출마한 이인제(李仁濟)의원이 대전연설회를 기점으로 대권 야심을 드러낸 것을 놓고 여당 내에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전당대회 같은 중요 정치행사에서, 더구나 경선과정에서 스스로를 세일즈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그가 충청도대통령 식으로 얘기한 것은 지역대립에 다시 기름을 붓는 것 같아 못마땅하지만 그 정도의 대권 야심을 내비친 것을 놓고 시비하는 건 신경과민으로 보인다.

오히려 문제는 기껏 최고위원 경선을 해놓고도 총재 추천 최고위원 중에서 대표최고위원을 지명하겠다는 발상이다.

유신 말기에 지역구의원을 제쳐놓고 대통령 추천케이스인 유정회 의원을 국회의장 시키려다 이른바 '백두진 파동' 을 유발했던 일이 생각난다.

영입 인사 배려, 여성 안배, 직능대표성 등을 감안해 최고위원에 총재 추천 케이스가 소수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대의원이 직접 뽑은 선출직보다 지명직을 중용하거나 우선하는 건 정당민주주의와 걸맞지 않는다.

미국 국회의사당에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문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권위가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선출되지 않은 사람은 선출된 사람과 똑같이 취급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선출직이 별 볼 일 없기는 야당도 마찬가지인듯 싶다. 지난 5월말 전당대회에서 7명의 경선부총재와 4명의 총재 추천 부총재가 나왔는데 선출직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 같다. 사실상의 수석대접도 추천직 원외부총재가 받고 있는 형편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했던 1970년,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을 총재로 선출했던 74년과 79년의 신민당 전당대회는 국민적 관심을 끈 축제였다. 민주주의가 억눌리던 시절 민주적 결정과정의 생생한 드라마를 보여줬다.

이 세번의 전당대회는 반전(反轉), 권력의 압력에 대한 항거, 민주적 경선결과에 대한 승복이란 여러 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평소 싸움질만 하는 것 같던 야당의 민주역량을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킨 대회였다. 오랜 민주화투쟁을 거쳐 두 金씨가 모두 집권에까지 이른 데는 이런 배경도 큰 몫을 했던 것이다.

20~30년 전에도 했는데 나라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정치지도자들이 모두 민주주의를 코에 걸고 다니는 이 시절의 전당대회가 민주정치의 드라마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말이 안된다.

그동안 정당들이 특정 지도자 중심으로 지역정당화하면서 당내 민주주의는 오히려 후퇴했다.이런 정당 체제와 이토스(ethos)로 새로운 세기, 새 밀레니엄을 이끌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가 정치도 아니게 꼬여가게 놔둬선 안된다.

전당대회는 정당민주주의의 축제가 돼야 하고,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성병욱 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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