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실사로 드러난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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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앙선관위는 지난 22일 4.13총선 비용 실사(實査)에 걸린 현역 의원 19명의 명단을 발표했다.선관위는 '최대한 적발해 검찰(고발.수사의뢰)에 넘겼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권 일각에선 '숫자가 적고 대어(大魚)급이 드물다' 는 의혹 섞인 시선이 있었다. 또한 의원들이 실사의 그물을 요리조리 빠져나가 적발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선관위쪽의 푸념도 들렸다.

그런 의혹과 푸념이 근거가 있음을 27일 나온 선관위(5면 표)자료는 확인하고 있다. 이 표는 선관위 기준에 맞추기 위해 회계보고서를 치밀하게 짠 흔적이 역력하다. 돈을 많이 썼다 싶으면 선거비용에 포함하지 않는 정당활동비로 옮겨 적어 놓았다.

민주당 윤철상(尹鐵相)전 사무부총장의 발언 파문 핵심이 바로 정당활동비 항목을 활용하라는 지침이다. 때문에 파문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 2백명 적발과 19명 고발의 차이=자료에 따르면 지역구 당선자들이 신고(5월 13일)한 평균 선거비용은 8천7백58만원. 평균 법정비용(1억2천6백만원)의 87%다.

'수십억 선거비용설' 이 나도는 판국에 형편없이 적은 내용이다. "쉽게 말해 엉터리 회계보고서다. 법정선거비용을 지킨 사람은 찾기 힘들 것" 이라는 게 여야 의원들의 고백이다.

그런 정황 덕분인지 '제대로 신고했는지' '돈을 더 많이 썼는지' 를 추적하는 선관위 실사에 걸린 의원들은 전체 2백27명 의원 중 무려 2백명이다.

88%가 걸린 만큼 이들을 몽땅 검찰에 고발하기는 곤란한 일. 때문에 선관위는 커트라인 선정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 오경화(吳璟華)선거관리관은 "위반자가 너무 많아 어느 선에서 고발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했다" 며 "▶고의성▶후보의 사전인지 여부▶위법사실이 중대하거나 금액이 큰 경우▶선거에 미치는 영향 등을 기준으로 고발자를 결정했다" 고 말했다.

선관위가 자체 판단했다는 것. 그러나 민주당 의총(25일)에서 나온 발언들은 이런 선관위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뛰어 선관위의 검찰 고발대상에서 동료의원들을 상당히 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축소.허위신고 실상=자원봉사자에게 일당을 지급하거나 선거운동원이 아닌 사람에게 돈을 주고도 선거비용 신고 때 누락하는 수법으로 허위신고한 경우가 적잖았다.

민주당 이창복(李昌馥).전용학(田溶鶴),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의원 등은 불법비용 지출로 고발된 케이스.

회계책임자의 통장을 통해서만 선거비용을 지출하도록 돼 있는 규정을 어기고 후보나 후보 측근이 돈을 지불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총선 당시 후보들 사이에선 "회계책임자에 조사의 칼날이 집중되기 때문에 실제 돈을 지출하는 사람은 따로둬야 한다" 란 얘기가 나돌았다.

◇ 사각지대 정당활동비=지구당 개편대회 개최비용은 물론 당원들에게 제공하는 식사.떡.다과비용은 정당활동비로 인정하고 있는 법을 교묘히 이용한 흔적이 뚜렷하다.

정당활동비는 선거를 겨냥한 행사지만 선거비용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 총선에서 정당활동비로 신고한 금액(평균)은 선거비용 2배 가까이 되는 1억5천9백만원.

일부 의원들의 경우 거꾸로 이 조항을 이용하려다 덜미를 잡혔다. 민주당 김영배(金令培)의원은 읍.면.동책에게 지급한 활동비 9천8백만원을 정당활동비로 신고했다가 이들이 규정 외의 선거운동원으로 판명돼 검찰에 고발됐다.

정당활동비(평균)는 민주당(2억2백만원)이 한나라당(1억2천8백만원)보다 휠씬 많다.

이정민.고정애.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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