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 무분별한 상혼에 제 모습 잃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안동 하회마을이 망가지고 있다.

초가지붕에 대충 잇대어 비닐천막을 치고 파라솔을 늘어놓은 음식점, 기와대문 한쪽을 가로막고 있는 아이스크림통, 진동하는 음식 냄새와 요란한 음악소리….

'가장 한국적인 곳' 이라는 이유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하고, 수백년 전 형태를 고스란히 보존해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까지 했던 안동 하회마을의 현재 모습이다.

유명해져 관광객들이 몰리자 주민들의 무분별한 상혼(商魂)이 발동하고 당국도 무관심으로 방치해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 실태=지난 22일 오후 하회마을 입구. 한국의 전통미를 생각하고 찾아온 관광객들의 눈길을 가장 먼저 잡는 것은 골목 양쪽에 비닐하우스로 만든 볼썽사나운 가게 세곳. 파전 냄새가 진동하고, 하회탈을 파는 선물집도 마을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마을 안쪽에 있는 중요민속자료 177호인 '하동고택' 에선 노부부가 파전에 동동주를 팔며 손님을 맞는다.

또 골목 어귀마다 나무판에 검게 '민박' 이라 적은 간판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고, 마당이나 가옥 벽에는 맥주와 소주병을 담은 박스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

만송정 옆 한 기와집 마당에선 음식을 기다리던 40~50대 아주머니 10여명이 이 집에서 틀어준 유행가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민속놀이 마당은 잡초가 무성하고 쓰레기더미도 여기저기 널려 있다.

1백3가구 2백30여명이 사는 하회마을은 현재 절반인 50여가구가 이처럼 음식점이나 선물가게.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전통마을을 기대하고 왔던 관광객들은 실망하고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朴의성(42.회사원.서울 목동)씨는 "기대와는 전혀 딴판이다. 입장료를 1천6백원씩 받는데도 마을이 온통 장사판인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며 "실제로 볼 만한 전통가옥은 사저라는 이유로 문을 잠가 볼거리가 크게 제한돼 있다" 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안동대 임재해(林在海.48.민속학)교수는 하회마을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에 비유하며 "주민들이 당장의 돈벌이 때문에 거위를 죽이고 있다" 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지난해 1백11만명을 기록한 관광객은 올들어 35만6천명(7월말)으로 급격히 줄었다.

◇ 주민 입장=주민 모임인 하회마을보존회 유완하(柳浣夏.68)회장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60대 이상 노인들" 이라며 "특별한 생계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옛 모습을 지키라고 설득한들 먹히겠느냐" 고 반문했다.

안동〓송의호.안장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