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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전 경기여고 이연의 교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금은 어머니가 됐을 수많은 단발머리 여학생들에게 '마음의 고향' 으로 남아 있던 스승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21일 77세의 나이로 별세한 이연의(李連儀.전 경기여고 교장)씨. 고인은 학생들을 '훈훈하고 넉넉한 마음을 지닌 반듯한 여성' 으로 키우는 데 40여년간 열정을 쏟은 교육자였다.

"탁월한 식견을 보인 교육행정가, 검소하면서 부지런한 선생님, 부유하거나 권력있는 사람을 싫어하고 교장실에서 호젓이 나물반찬의 도시락을 잡수시던 소박한 어머니…. "

이창갑(李昌鉀)전 서울시교육감은 이렇게 고인을 추모했다.1923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고인이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게 된 계기는 소녀시절 일본인에 의해 맺힌 응어리 때문이었다.

"더럽고 질서가 없는 모습을 보면 한국인을 떠올리던 일본인들의 선입견, 조센징에게는 빌려 줄 셋방도 없다고 내뱉던 그들의 오만.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한국인 스스로 '엽전' 이라고 비하하는 모습. 오랜 고민 끝에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하며 그 힘은 교육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했다." (고인의 회고록에서)

일본 후쿠오카의 나오가다 고등여학교를 마친 고인은 이런 각오를 실천에 옮겨 홀로 귀국한 뒤 공주사범(43년)과 경성여사대(현 서울대 사대)지력(地歷)과를 나왔다.

이후 수도.창덕.무학여고 교사를 하면서 여학생들의 머리카락, 옷맵시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던 '호랑이 선생님' 이자 '자상한 언니' 로서 학생들을 보살폈다.

수도여고 제자인 성우 고은정(高恩晶)씨는 "가르침에는 엄격했지만 한국전쟁 때 부산 범일동 천막교실에서 굶주린 제자들에게 당시만 해도 귀하디 귀한 감자를 나눠주시던 인정 많은 분이었다" 고 회고했다.

교장으로 재직할 때는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정성껏 가르쳐야 바른 제자를 키울 수 있다' 는 철학으로 환경정비에 나섰다.

"공립학교 교장이 그 학교에 얼마나 오래 있는다고 그렇게 극성을 부리느냐" 는 핀잔을 들을 정도였다.

고인이 71년 초대교장으로 부임했던 수유여중과 개포동의 경기여고 새 교사(校舍)가 교육의 요람으로 변모한 데에는 고인의 이런 정성이 밑거름이 됐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8년 5개월을 재직한 경기여고 교장시절 고인의 별명은 '목장아가씨' .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하루종일 밖에서 조경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바람에 생긴 별명이다. 황량한 벌판에 수유여중을 신축할 때는 공사장에서 직접 흙을 만졌으며, 본관 뒤 언덕에 로프를 타고 올라가 진달래를 심기도 했다.

특히 학교부지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2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되자 새벽부터 군 부대장의 집을 찾아가 "군에 앞서 교육이 있다" 고 매달린 일화도 있다.

당시 "군 작전 상 부득이하다" 는 군 관계자에게 고인은 "유사시에는 학교 3, 4층을 토치카로 사용하게 할테니 건물을 짓게해 달라. 분명히 군보다 교육이 먼저" 라고 졸라 끝내 양보를 받아냈다.

서울여고 교장을 거쳐 88년 경기여고에서 정년을 마친 고인은 3년전 부터 자궁암을 앓다가 최근 병세가 악화돼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맏아들 장원석(張元錫.46)씨는 "어머니는 투병생활 중에도 재직했던 학교가 성장하는 것, 제자들에게 기쁜일이 생겼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었다" 고 전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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