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는 어디로 갔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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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가 한달 가까이 공전하고 있다. 이산가족 재회를 비롯해 남북간 굵직한 현안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데도 국회는 그저 낮잠만 자고 있다.

남북문제뿐만이 아니다. 의료폐업.현대그룹문제.금융구조조정 등 각종 현안으로 나라가 온통 들썩거리는 데도 여야는 국회소집에 뜻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국회는 정부 법안에 손이나 들어주는 통법부가 아니다.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또한 중요한 임무다. 그걸 포기했으니 국회는 중대한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북 화해시대에 국회가 구경꾼으로 전락했으니 역사적 소임을 저버리는 중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날치기사태 이후 여야는 서로 상대 탓만 하고 있다. 여당은 야당이 국회 정상화를 훼방놓고 있다 하고, 야당은 날치기에 대한 사과부터 하라는 식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31일 임시국회를 소집했다가 소속의원 3명의 항명성 외유로 정족수가 모자라자 문을 닫았다. 그리곤 집안잔치인 전당대회에?매달려 있다. 한나라당은 요구조건 관철만을 내세우며 무한정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야당의 입장에서 정부의 남북정책.개혁정책에 대해 할 말이 많을 법도 한데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면서 여야 각당은 성명.회견.촌평 등 국회 밖에서만 목청을 높인다. 이상한 '외마디 정치' 만 횡행할 뿐이다.

지금은 남북문제가 급류를 타고 있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차대한 시기다. 시대적 민감성을 감안하더라도 여야는 신경전이나 벌이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당장 국회를 소집, 대화 정국을 복원하고 국정 현안 심의에 착수해야 한다.

정부 대북정책의 잘잘못을 따져 완급을 조절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게 국회가 할 일이다. 특히 남북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그에 따른 국민의 우려와 궁금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의선 철도 복구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쪽 지뢰부터 제거한다는데 군사적 위협은 없는 건지, 미국과의 공조엔 이상이 없는지, 남북 합의가 어디까지 이뤄진 것인지 등 국민적 의구심이 무성하다.

국회가 이같은 사항들을 꼼꼼하게 따지고 잘못은 추궁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적 합의에 의한 통일사업을 이끌기 위해서도 국회의 역할은 막중하다.

국회가 공전하는 바람에 묶여 있는 민생법안도 수두룩하다. 2조4천억원의 추경예산안과 정부조직법 개정안.금융지주회사법안 등은 처리를 더이상 늦출 수 없다.

정기국회가 9월 1일 소집되기 때문에 사실 임시국회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여야의 감정대립 상태로는 정기국회 역시 파행 운영이 불보듯 뻔하다.

최소한 여야 대화를 복원하는 일부터 당장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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