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읽기] 감상음악에 젖은 현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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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국악계의 동향과 이슈.공연리뷰까지 포함해 국악의 길잡이와 나침판 역할을 할 칼럼 '임미선의 국악 읽기' 를 매주 연재한다.

몇달전인가 서울 시내 호텔의 전통음식점에 간 적이 있다. 외국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라서인지 반갑게도 국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 음악은 '종묘제례악' 이었다. 하필이면 종묘제례악이라니 아무래도 식당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그 음악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런 부조화는 장중한 교향곡을 들으며 음식을 먹을 때에도 경험한다.

식당 분위기와 음악의 조화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미국에서 일식당을 갈 때마다 접하는 샤미센이나 고토의 연주다. 온통 일본풍으로 꾸민 실내 분위기에 잘 맞았다.

반면 외국의 한국 식당에는 음악은 고사하고 인테리어에서도 한국의 전통적인 느낌을 전달해 줄 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비하면 서울의 한식당에서 국악으로 전통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배려와 노력은 돋보인다.

다만 종묘제례악을 선곡한 넌센스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한 착오와 몰이해는 음악의 탈(脫)기능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국악은 연주회나 방송매체를 통한 감상용 음악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 기능적 성격을 띠는 실용음악이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 역대 왕들의 제사에 사용하던 음악이고, 노동요는 공동노작에서 피로감을 덜어주고 일체감을 형성하기 위한 노래였다. 종묘제례악은 역사도 깊을 뿐만 아니라 예술성 높은 음악이다.

매년 5월 종묘제향 때에 연주되는 경우에만 본래의 기능성을 되찾을 뿐 대부분 연주회에서 청중을 위한 감상용으로 연주되고 있다.

지난해 국립국악원에서는 제례의식과 더불어 종묘제례악을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이 연주회는 종묘제향 때의 혼잡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음악감상이 방해를 받는 단점을 줄이면서도 그간 무대공연에서 배제됐던 기능적 측면을 부각시킨 성공작이었다.

국악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이러한 시도는 바람직하다.

무대에서 신명나게 연주하는 사물놀이로 농사 현장에서 펼쳐졌던 풍물의 소박한 멋과 맛을 느끼기 어렵다.

더구나 무동(舞童).포수 등이 뒷치배로 곁들여지는 농악대 공연은 무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장의 느낌을 고스란히 무대화하기는 어렵지만, 무대 장치나 공연 방식 등을 고안해 들려주는 음악에서 보여주는 음악으로 유도하는게 바람직하다.

임미선

<임미선 약력>

▶서울대 국악과 졸업

▶동 대학원 음악학 박사

▶전북대 국악과 교수^연구모임 '문헌과 해석'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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