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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100주년' 학계 재조명 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오는 25일은 독일 철학자 니체(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사진)가 죽은 지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신은 죽었다" 고 외친 니체는 1900년 8월 25일 독일 바이마르 병원에서 한 많은 인생을 마감했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짐마차를 끌던 늙은 말이 채찍질을 당하자 말의 목을 잡고 울부짖다 길바닥에 쓰러져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지 12년 만의 일이다.

이 날 그의 죽음은 그에 얽힌 억측과 곡해의 종말이자 또한 서막이기도 했다.광인(狂人)처럼 산 그의 말년은 불우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죽음으로 그런 곡절과 인연을 끊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는 그의 철학에 대한 무자비한 왜곡을 동반했다. '초인(超人)사상' 은 파시즘의 이론가들에 의해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의 토대를 강화하는 데 악용됐다.특히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그런 악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은 참혹한 아이러니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꼭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니체는 시대를 앞선 예언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1962년 프랑스의 지성 질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 을 기점으로 재평가 작업이 불길처럼 타올랐고, 우리는 니체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정치의 서광을 목격했다.

생태철학과 페미니즘 등 수많은 현대이론이 그에게 빚을 지고 등장했다. 특히 그의 철학을 관통하는 비인간화에 대한 경고는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20세기를 위무하는 씻김굿과 같은 것이었다.

그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서양의 조류를 목격했거나 직접 그 조류에 발을 담그고 공부한 학자들이 니체 연구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최근 '니체 신드롬' 이란 말이 유행하게 됐고, 심지어 그의 저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영감을 얻은 뮤지컬까지 등장했다.

서거 1백주년을 맞은 올해는 '니체 다시보기' 의 절정이다. 한국니체학회(회장 정영도.동아대 교수)는 이미 니체전집(독일 테페사우사) 간행작업을 시작, 올 하반기부터 내년 초까지 16권을 낼 예정. 10월 13일에는 부산 동아대에서 '오늘날 니체는 누구인가' 라는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가 열린다.

니체에 대한 외경(畏敬)의 표시다. 기일에 때맞춰 국내의 중견.소장파 니체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도 집대성돼 나왔다. 민음사가 펴낸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 에는 모두 9명의 연구자가 1년간의 각고 끝에 완성한 글들이 실려 있다.

김상환.박찬국(이상 서울대 교수).윤평중(한신대 교수).신승환(가톨릭대 교수).김진석(인하대 교수).백승영(서강대 강사).이창재(연세대 강사).서동욱(벨기에 루뱅대 박사과정).장은주(서울대 강사)씨가 필진이다.

니체 철학을 보다 폭넓게 해석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제1부 '니체의 생애와 사상' 에서는 니체의 탄생과 죽음, 철학적 명제들을 쉽게 해설했다. 이어 '니체와 현대 사상의 흐름' 에서는 프로이트.마르크스.하이데거.들뢰즈.푸코.데리다에 이르는 니체 계보학의 다양한 관점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니체 철학이 담고 있는 탈근대적 사유의 문양과 후기구조주의적 특성 등에 관한 에세이다.마지막에 소개된 '니체와 더불어 철학하기' 는 미학적 관점에서 니체에 접근한 것. 전통철학의 경직성을 타파하는 선언으로 "예술은 진리보다 더 가치 있다" 고 외친 니체의 예술론이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됐다.

한편 책세상도 독일 그루이터사의 니체 비평전집을 2003년까지 번역하기로 하고, 1차분2권(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유고, 1887년 가을~1888년 3월' )을 곧 출간한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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