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언론 상봉 육성 그대로 방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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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북한 언론들도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된 15일부터 서울과 평양의 상봉 장면을 그날 그날 상세히 보도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정감 어린 표현을 사용하며 있는 그대로를 보도하는 모습이 경직되고 대남 비난을 간간이 섞던 1985년과는 달랐다.

조선중앙TV는 상봉 이틀째인 16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과 평양 고려호텔에서 이산가족 방문단이 개별상봉한 소식을 전하며 상봉가족들의 대화를 그대로 내보냈다.

현장음 없이 방송화면과 아나운서의 육성만 내보내던 예전에 비하면 상당한 파격이다.

이날 오후 8시 뉴스에서는 북한의 계관시인 오영재씨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부치는 장문(長文)의 시를 애닯게 읽는 모습을 비롯해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이 남한에 거주하는 가족.친척과 상봉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했다.

"방문단 성원들은 남녘의 혈육들과 서로 부둥켜 안고 헤어져 50여년 만에 다시 만난 기쁨의 격정을 또다시 터뜨렸다" 면서 "그들은 그리운 가족과 친척들의 안부를 물으며 회포도 나누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는 등의 멘트를 곁들였다.

또 남측 방문단의 평양 상봉을 전하며 "어렸을 때 아명(兒名)을 부르고 헤어질 때 가슴아픈 추억을 되살리며 틀림없는 부모처자이고 형제임을 확인했을 때는 서로 와락 부둥켜 안은 채 오열을 터뜨리던 이들이 오늘은 어느 정도 진정된 마음을 안고 또다시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 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은 이번 상봉을 시작으로 분단 장벽이 허물어졌으면 한다는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16일 오후 8시30분쯤 고려호텔 '매대' (매점)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 서울에서 북측 방문단이 남측 가족들을 상봉하는 장면이 방영되자 순식간에 판매 여직원 10여명이 몰려들어 상봉장면을 눈물지으며 지켜보았다.

호텔에 근무하는 김금련(25)씨는 "비록 텔레비전으로 보지만 내가 당한 일처럼 가슴이 아프다" 며 "이번 민족의 대경사로 분단 장벽이 허물어졌으면 한다" 고 말했다.

북한 라디오방송인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17일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의 전날 활동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들 방송은 오전 7시 보도에서 남측 방문단이 16일 대동강 유람선 승선 관광에 이어 단군릉을 관광하는 등 평양 시내를 둘러봤다고 전했다.

또 방북한 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 일행이 16일 평양지하철 부흥역과 영광역에서 지하철의 시설과 벽화 등을 둘러봤다고 소개했다.

17일 오전 6시와 7시, 16일 오후 10시 보도에서는 16일 쉐라톤 워커힐 호텔과 고려호텔에서 개별상봉한 소식을 반복 보도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북한의 주요 신문들도 16일 3면 또는 4면에 이산가족 상봉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주로 이번 상봉을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첫 걸음' 으로 평가하고 상봉분위기를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행 및 통일분위기 조성과 연계시키는 논조였다.

예를 들어 민주조선은 '우리 민족은 하나, 온 겨레가 얼싸안을 통일의 그날을 앞당기자' 는 표제를 붙였다.

북한이 지난 15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홍성남 내각총리 등 고위간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6.15공동선언 지지 정부.정당.단체연합대회' 라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4개항의 공동결의문을 채택한 것도 통일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파악된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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