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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학대받는 아동에 휴식처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아빠를 감옥으로 보내주세요. " 이제 여덟살밖에 안된 南모(C초등3)군이 아버지의 상습적인 구타에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서울 성동경찰서 형사계 사무실에 불려와 한 말이다.

조서를 받던 담당 경찰관은 "아버지를 구속해달라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南군이 얼마나 아버지에게 시달렸으면 이런 말까지 했겠냐" 고 말했다.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아들을 때렸던 南군의 아버지는 지난 8일 구속됐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됐을까. 南군의 상처는 그대로다. 마음의 상처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새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에 대해 처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동보호 전문시설을 설치해 학대받은 아동의 조사.예방은 물론 보호와 치유까지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지난달 말 복지부령으로 전국 17개 시.도마다 관련기관을 설치하고 24시간 신고전화를 운영하도록 했다. 그런데 현재까지 설립.운영되고 있는 전문시설은 전국에 단 한곳도 없다.

지난해 12월 개정 아동복지법이 통과됐지만 모두 18여억원이 소요되는 보호시설 예산이 올해는 전혀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 아버지를 단순히 자신을 폭행하고 괴롭히는 사람 이상으로 여기지 않게 된 南군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할 곳이 없다. 나아가 가정회복을 목표로 한 아동보호의 취지도 살리지 못하게 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도 단체장에 공문을 보내 신고전화 설치와 민간 아동보호단체를 전문시설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요청했다" 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 중랑구에서 이틀간 방안에 방치된 상태에서 사회복지법인 '이웃사랑회' 로 넘겨져 현재 '수양부모협회' 의 협조로 가정위탁에 들어간 생후 20개월 쌍둥이처럼 민간에 맡기는 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든 시.도에 전문보호시설이 한곳씩 생긴다고 해도 학대받는 아이를 모두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 이라고 지적한다.

이웃사랑회 이호균(李好均.50)사무국장은 "법 따로, 예산 따로여서 아동복지법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겠느냐" 고 반문한다.

아동보호와 관련해 법안은 선진국 수준인데, 실천은 백지상태라는 지적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정효식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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