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형식의 '…외계인 백과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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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고래는 원래 지중해에서 희귀하다. 그래도 로마 시대 선원들은 바다를 건너면서 가끔 길이가 50m에 이르는 고래를 발견했다.

배보다 더 큰 고래가 콧구멍으로 물을 뿜으면 질겁했다. 선원들은 항구에 도착해 뭍 사람과 만나면 때로는 사실 그대로, 또 때로는 완전히 부풀려서 겪은 얘기를 전했다.

물론 아무리 얘기해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큰 물고기라면 물 속으로 가라앉아야 할 것이라는 꽤 논리적인 주장을 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고래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겁에 질린 상태는 사람의 기억을 희미하게 한다. 동시에 공포가 극대화해 사건을 과장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신화가 태어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신화의 이면에는 사실적 토대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고래 효과' 다.

고래의 크기나 고래의 몸부림이 아무리 과장됐다해도 고래를 봤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인 것처럼 외계인과의 만남도 객관적인 사실일 수 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외계인 백과사전' 은 백과사전이란 이름에 걸맞게 여기저기 흩어져 무수한 설로만 존재한 외계인 관련 일화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외상이 없는데도 신체 내부의 기관이 사라진 동물의 시체 등 사람이 했다고 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건을 적은 '가축, 잔혹한 도살' 에서부터 '고래 효과' 등 고래에 관한 궁금증을 가나다 순으로 1백여개 항목으로 나눠 정리하고 있다.

지구인이 최초로 외계인을 목격했다는 1947년 이후 외계인의 존재는 끊임없는 논란거리를 제공

해 왔다.

UFO목격 증언이 이어지고 진짜라고 인정받은 사진도 수도 없이 외계인 존재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단지 미치광이들의 헛소리일까. 외계인의 존재 여부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외계인 소재의 영화가 워낙 많아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드는 항목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검은 옷의 사나이들' 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맨 인 블랙' 내용과 너무나 똑같아 혹시 영화를 그대로 베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차피 영화가 완전한 상상력의 산물일 수 없고 이미 존재하는 증언을 바탕으로 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처럼 이 책은 백과사전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짤막한 소설을 읽는 재미를 준다.

사실 이같은 방식은 96년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에서부터 시작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 속 주인공인 에드몽 웰즈 박사의 유고로 등장했던 가상의 책을 베르베르가 실제로 만들어 낸 것이다.

개미에 관한 모든 것을 에세이, 혹은 소설 형태로 썼던 이 책이 큰 호응을 얻자 이 책 이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저승의 백과 사전' (97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마법의 백과사전' (97년)이 잇따라 출간됐다.

매번 저자는 바뀌었지만 생동감넘치는 그림은 베르베르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을 능가하는 화가' 라고 극찬한 기욤 아르토가 그렸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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