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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홀 서는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 꿈과 땀이 기적 이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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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명훈·사라장·양성원·김대진 등 많은 음악인들이 함께 연주, 따뜻한 음악의 상징이 된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가 2월 음악의 중심지인 뉴욕 카네기홀에서 연주한다. 창단 31년 만의 첫 해외 나들이에 아이들은 마냥 들떴다. [미라클오브뮤직 제공]

김진호(18)군은 부산 알로이시오 고등학교에 다닌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아동복지시설 ‘부산 소년의집’에 들어왔다고 한다. 부모 대신 수녀회와 친구들이 그를 길러냈다.

김군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났다. “중·고등학생 형들이 리허설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로시니의 ‘기욤 텔’ 서곡이었다. 재빠르게 움직이며 오케스트라를 주도하는 바이올린은 이때부터 그를 설레게 했다. 전자 기계 기술을 배우다 졸업 후 바로 취직하는 같은 학교 친구들과 달리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현재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의 제2바이올린 주자다.

김군은 요즘 하루 9시간씩 연습을 한다. ‘부산 소년의집 오케스트라’가 2월 11일 세계 음악계의 중심 무대인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를 후원하고 있는 지휘자 정명훈(57)씨가 지난해 8월 연주 후 “해외 공연을 해도 될 수준이 됐다”며 카네기홀 대관을 추진했다. 1979년 미국인 신부 고(故) 알로이시오 슈왈츠 몬시뇰이 창단한 후 31년 만의 첫 해외 연주다. 소년들의 연습도 한창이다.

◆서로 아끼며=카네기홀은 김진호군에게 꿈의 무대다. “지금까지 서 본 가장 큰 무대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극장 ‘용’이었어요. 그때도 설렜는데 카네기홀이라니….” 김군의 목소리가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는 뉴욕 연주에서의 제2바이올린 수석을 한 살 어린 후배에게 내줬다. “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어요. 뉴욕 연주가 고1 후배들에게 자존심과 자신감을 심어줄 거라고 믿어요. 선배들이 저희에게 그렇게 해줬고, 이제 저희가 할 차례죠.” 이 오케스트라 내에서는 꿈의 무대에 수석 연주자로 서는 욕심보다 서로 이끌고 가는 마음이 먼저다. 김군뿐 아니라 대부분의 고2 학생이 고1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치열한 경쟁과 연습은 이 오케스트라의 문화와 거리가 멀다. 선배는 같은 악기를 하는 후배들을 따로 모아 지도한다. 재학 시절 오케스트라를 거쳐 사회 각계로 나간 졸업생들 또한 뉴욕 연주를 위해 다시 모였다. 57명의 졸업생이 오케스트라 연습을 지도하고 함께 연주하기 위해 매 주말 부산 소년의집을 찾고 있다.

◆음악은 나의 힘=정명훈씨의 셋째 아들인 민(26)씨가 지휘하는 이번 뉴욕 연주의 제목은 ‘세상을 바꾸는 까까머리 소년들의 자선음악회’다. 의지할 곳 없던 까까머리 소년들이 세상을 바꾸는 힘은 오직 음악이다.

김진호군은 “음악은 살아가면서 평생 해야 할 숙제 같다”는 어른스러운 답을 내놨다. 트럼본을 맡은 박민혁(17)군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음악뿐”이라고 했다.

뉴욕 무대를 위해 요즘 밤 10시까지 트럼펫을 불다 잠드는 박승주(17)군도 “카네기홀에서 연주하는 상상을 하면 연습 때문에 터져버린 입술도 따갑지가 않다”고 거들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박불케리아 수녀는 “우리 아이들은 언제쯤 큰 무대에 설 수 있을까, 항상 마음에 숙제가 있었다. 간절히 바라는 건 정말 이뤄지나 보다”라며 아이들의 마음을 대신 전했다. 음악과 떨어질 수 없는 소년들의 새해가 흥분과 기대로 밝아오고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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