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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자 한 서린 부관연락선, 이젠 웃음 가득한 관광페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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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10년은 유난히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많은 해다. 국권을 앗아간 경술국치(庚戌國恥)가 꼭 100년 전 일이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전 국토가 전쟁의 참화에 휩싸인 게 60년 전이다. 값비싼 민주주의의 씨를 뿌린 4·19의 외침이 터져나온 지 50년. 산업화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는 40년 전 개통됐다. 5·18이라는 민주화의 희생을 치른 지도 30년이 지났다. 이 모든 상처와 영광을 딛고 우리는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했다. 올해 11월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주요 20개국(G20) 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지난 100년의 대사건을 미래지향적으로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일본에 남아 있는 경술국치 흔적을 찾아 … 현지 르포

일제강점기에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를 연결하는 항로는 ‘부관연락선’이라고 불렸다.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후 강제 노역이나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현해탄을 넘어가야 했던 많은 한국인의 한숨과 눈물이 가득 배어 있던 곳이다. 일본인들도 이 배를 타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부관연락선을 연구해 온 최영호 영산대 일어학과 교수는 “부관연락선은 일제시대에 유일한 양국의 인구이동 수단이었다”며 “노선이 생긴 1905년부터 해방 때까지 약 3000만 명이 승선했다”고 밝혔다.

해방된 지 65년이 됐지만 일본에는 아직도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지난해 12월 8일 일본 교토(京都)의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본부 내 사무실. 일본을 뜻하는 붉은 태양이 한반도를 삼킨 배경 아래 한복을 입은 조선 어린이들이 일본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을 그린 엽서, ‘1910’이란 숫자와 한국·일본이 갈색으로 칠해진 그림이 있는 종이, 일본에서 금빛 새가 한반도를 향해 날고 있는 모습이 수놓아진 남성 전통옷(기모노) 등이 준비돼 있었다. 지난해 고서점 등에서 이 자료들을 발견한 이 대학 기다치 마사아키(木立雅朗) 문학부(고고학) 교수는 “1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라며 “교토의 전통산업도 전쟁과 침략이란 어둠의 문화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제는 1939년 한국인의 혼까지 뺏기 위해 한국인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는 ‘창씨개명’까지 강행했다. 도쿄의 민단 역사자료관에는 1학기 때는 ‘이무형(李茂炯)’이었으나 2학기 때는 ‘다케다 시게루(武田茂)’로 이름이 바뀐 한국 초등학생의 성적표가 전시돼 어두웠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본 내에서 꿋꿋하게 ‘한국인의 삶’을 지키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재일동포가 많다. 오사카(大阪)에 있는 코리아타운은 대표적이다. 재일동포 2세인 홍여표(80) 코리아타운 중앙상점회 회장은 “1945년 직후에 생겨나 60년대에는 일본 전국에 한국 전통 식자재를 공급할 정도로 번성했으나 80년대 들어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포들의 역사와 삶의 터전을 살리기 위해 93년 코리아타운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코리아타운은 간사이 지역의 한국인 식당 등에 식자재 등을 공급하는 동시에 일본의 대표적인 ‘다문화 체험 장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홍 회장은 “최근 코리아타운을 찾는 사람의 절반은 일본인”이라며 “한국 문화, 재일동포 역사 등을 알기 위해 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홋카이도(北海道) 등 일본 전국에서 수학여행을 와 김치교실 등을 체험하고 돌아갈 정도다. 코리아타운에는 거리 500m에 120개의 가게가 있다. 이 중 40여 개는 일본인이 운영한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힘을 합쳐 한·일 축제마당을 열었다. 2만여 명과 국회의원 2명도 참가했다. 코리아타운 입구에는 일본에 한자와 유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진 백제 학자 왕인 박사의 비석도 세워졌다. 홍 회장은 “비록 끌려온 사람들의 후손이지만, 코리아타운은 이제 일본에서 다문화 공생사회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간에는 해방 후에도 부침의 역사가 많았지만 민간 교류가 크게 늘어나는 등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60년대 양국을 오가는 사람은 연간 1만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하루에 1만 명을 훨씬 넘는다. 한류의 영향으로 일본 내에서 한국의 이미지도 매우 좋아졌다.

오영환 오사카 총영사는 “한·일 우호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선 민간 교류 확대가 중요하다”며 “일본 내에서도 과거를 반성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교류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많다”고 밝혔다. “일본 나라(奈良)에 있는 지벤학원은 일제의 36년간 한국 통치를 반성한다는 차원에서 지난 36년 동안 매년 고교생 20~300여 명을 한국에 수학여행을 보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6일 밤 시모노세키로 가기 위해 부산에서 탄 페리(1만6000t급)에는 2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대부분 서울·여수 등 전국에서 온 한국 관광객이었다. 배 안에는 웃음과 즐거운 대화가 넘쳤다. ‘부관훼리’ 관계자는 “올해만 약 15만 명이 배를 이용했다”며 “대부분 관광객”이라고 밝혔다. 최영호 교수는 “부관페리는 관광을 중심으로 한 한·일 교류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정한 우호 관계가 되기 위해선 일본 정부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강덕상(시가현립대 명예교수) 민단 역사자료관 관장은 “일 정부가 과거 피해자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며 “일본 정부가 일제 때 강제 징용 피해를 본 한국인들에게 연금 탈퇴 수당으로 99엔을 지급하는 것과 같은 일이 더 이상 벌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 아사히(朝日)신문은 최근 “일 정부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계기로 미해결 과거사 문제를 적극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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