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여름날씨 패턴이 바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한반도 여름 기후의 패턴 변화가 뚜렷이 감지되고 있다.

여름 비의 대명사인 장마가 점차 유명무실해지고 '마른 장마→장마 후 집중호우' 가 여름철 강우의 특성으로 자리잡고 있다.

24일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1991~99년) 장마기간과 장마 종료 후 여름철 강수량을 비교해 본 결과(이하 서울기준), 장마기간 중 평균 3백44.5㎜의 비가 온 데 반해 장마 후 8월말까지 4백77.5㎜의 비가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마기간 중 많은 비가 온다' 는 종래의 상식을 뒤집는 것이다. 특히 94년부터 올해까지 97년을 제외하곤 장마기간 이후의 강수량이 장마기간 강수량을 능가했다.

과거엔 평년기준(61~90년의 평균값)으로 장마기간(4백33.8㎜) 중이 장마 후(3백3. 2㎜)보다 훨씬 많은 비가 내렸었다.

이에 따라 '마른 장마=가뭄' 이라는 등식 속에 장마기간 중 1년 강수량의 약 30% 이상이 오지 않으면 가뭄이라고 인식돼 왔다. 하지만 최근 여름철 비의 원인이 장마보다는 대기불안정.태풍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강우 패턴이 변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 3년간 공교롭게 장마종료 선언 직후 대기 불안정으로 인해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온 현상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원래 매년 여름 장마가 걷히면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전체를 덮어 불볕더위를 몰고 왔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은 장마 후 북태평양 고기압이 비정상적으로 약화돼 한반도 남서쪽에 머물곤 한다.

이에 중국대륙에서 다가오는 기압골과 북태평양 고기압 사이에 '힘의 공백' 이 생기고, 이 틈을 타 한반도로 유입된 고온 다습한 남서기류가 북서쪽의 찬 기압골을 만나 집중호우를 불러오고 있다.

하지만 기상전문가들은 원인에 대해서는 지구온난화.해수면 온도 변화 등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원론적 답변만 내놓고 있다.

기상청 박정규(朴正圭)장기예보과장은 "한반도에 삼한사온이 없어진 지 오래됐듯 이제 '여름비=장마' 라는 등식도 사실상 사라졌다" 며 "비정상적인 해수면 온도 변화에 따른 기압계의 움직임과 대기불안정으로 인한 집중호우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 라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