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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북한서 큰 돈 벌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1998년 11월 현대그룹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20개월 동안 27만명이 금강산에 다녀왔다.

이는 89년 민간인의 왕래 물꼬가 터진 후 98년까지 10년간 북한을 방문한 총 인원(5천7백여명)의 50배 가까운 규모다.

금강산 구경을 하고 온 사람들은 "통일 교육이 따로 없다" 고 말한다. 단시일 내 남북의 거리를 좁히는데 일조한 역사적 사업이랄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이렇게 헤픈 사업도 드물다. 매달 1천만달러 정도를 손해(현대측은 투자라고 표현)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내년 말~내후년 흑자전환을 목표로 호텔.카지노를 현지에 짓기로 하는 등 여러 가지를 궁리하고 있으나 기대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선 "애초부터 수익을 올리기 어렵게 돼 있다" 며 "현대가 너무 서둘렀다" 고 지적한다.

81년 서슬 퍼렇던 시절,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정주영(鄭周永) 당시 전경련 회장을 불러 "기업인도 국가에 헌신하라" 고 으름장을 놓자 鄭회장은 "이익을 위해 사막을 휘젓고 다니다 목숨을 잃을 수는 있으나 국익을 위해서라면 그렇게까진 하지 않습니다" 라고 응수했었다.

고향이 이북인 鄭회장은 그러나 필생의 대업으로 여기는 남북경협 만큼은 생각이 다른 듯하다.

현대그룹만 그런 게 아니다.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본사가 대북경협에 임하는 자세를 조사했더니 절반 이상(18곳)이 "당장 손해보더라도 장기적으로 이익이 예상되면 한다" 고 응답했다.

3곳은 "이익은 중요하지 않다. 평화통일에 기여하면 된다" 고까지 밝혔다.

정상회담 이후 대기업은 물론 중소.벤처기업까지 대북사업에 달아오르고 있다. 이원호 중소기협중앙회 부회장은 "북한에서 임가공 사업을 희망하는 중소기업만 1백50개에 이른다" 고 전했다.

지금까지 남북경협 관련 39개사가 협력사업 자격을 승인받았고, 금강산 관광 등 10여개 사업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큰 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개발도상국, 특히 공산권에서의 경협은 쉽지 않다. 세계수출가공구협회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2백여개 가공구(경제특구)중 25~30개만 성공했다.

협회가 만든 점검표를 북한에 대입해 보면 첫째 항목(인력)은 문제가 없다. 박병찬 전자조합 사업본부장은 "평양 공장에선 저녁 때 클레임을 걸면 밤을 세워서라도 아침까지 고쳐놓고, 장비를 자기 몸처럼 닦는다" 고 북한 근로자를 평가한다.

그러나 나머지 2~10번 항목은 이제부터의 과제며, 특히 개별 기업의 각개약진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할 숙제다.

따라서 행보가 빨라야 할 쪽은 민간 기업이 아니라 정부다. 투자보장.이중과세 방지.대금결제.분쟁조정 등 4대 협정 체결이 급선무다.

철도.도로 연결과 전력 공급 등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 남북경제공동위를 빨리 가동해야 하며, 필요하면 민관 합동기구도 만들어야 한다.

과거 서독은 신탁관리소를 만들어 동독 대외무역성과 70년부터 90년 통일될 때까지 1주일이 멀다 하고 자주 만났다. 지금 평양에서의 무용담을 자랑하면서 제2 중동 특수.시베리아 횡단 실크로드 등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민병관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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