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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원 담배회사 배상 판결 이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담배를 둘러싸고 깜짝 놀랄 만한 사건들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담배 제조회사들은 몇년 이내에 생사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고 담배 역사마저 다시 써야 할 판이다.

1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순회법원 배심원단이 5개 담배회사에 징벌적 배상금으로 1천4백50억달러(약 1백60조원)를 물도록 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물론 최종 판결까지는 여전히 많은 시간과 절차가 남아 있다.

더구나 주법(州法)은 피고 담배회사들을 파산시킬 수는 없도록 하고 있어 사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말버러 등을 생산하는 필립 모리스의 경우 "집단 소송을 낸 70만명에 대해 일일이 따지려면 앞으로 소송에 50년은 걸릴 것" 이라 맞서고 있다.

그래도 사건의 의미는 각별하다. 우선 이번 평결은 개인이 아닌 수십만명이 평결에서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따낸 첫 사례다.

배상금의 일부만 확정돼도 5개 회사는 사실상 모든 자산을 처분하고 담배 연기처럼 흩어져야 할 판이다.

그동안 미국 담배회사들은 1998년 11월 46개 주정부와 향후 25년간 2천억달러(2백20조원)가 넘는 돈을 배상금으로 지출하겠다고 타협함으로써 배상문제는 마무리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번 평결은 흡연자 개인에 대한 손배배상 책임도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법원들은 정말 담배회사들의 문을 닫게 할 것인가. 그럴 경우 미국에 '밀연(密煙)' 산업 같은 것이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담배회사들은 이번 재판과정에서 1억달러 이상 평결이 날 때는 파산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담배회사들이 파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중독된 끽연가들은 담배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즐겨 찾을 것이기 때문에 이번 평결은 결국 담뱃값만 올릴 것이라는 것이다.

담배의 운명을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여하튼 이번 평결은 미국 흡연문화가 겪고 있는 변화가 또다른 차원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 담배는 이미 생산자가 해악을 광고하고 구입중지 방법을 설명하는 유일한 상품이 돼 있다. 면피용이라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필립 모리스의 웹사이트는 담배를 끊는 데 유익한 정보를 안내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는 '피해배상을 받는 방법' 까지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담배관련 판결 일지]

▶1954년〓한 폐암환자가 담배회사 상대 첫 손배소 제기. 13년 뒤 기각

▶1964년〓미 공중위생국장, 흡연이 폐암 유발 원인임을 처음으로 인정

▶1965년〓담뱃갑에 흡연경고 문고 삽입 의무화

▶1971년〓담배 방송광고 전면금지

▶1993년〓버몬트주, 주정부 최초로 관공서 등 공공장소 금연 의무화

▶1994년 5월〓미시시피주, 주정부 최초로 담배사 상대 손배소 제기 이후 23개 주정부가 개별적으로 소송 제기

▶1998년 11월〓46개 주정부, 담배회사들과 2천4백60억달러 손해배상 합의

▶1999년 9월〓미 법무부, 정부 의료비 지출 증가분 책임지라며 담배사 상대 수십억달러 손배소 제기

▶2000년 4월〓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순회법원 배심원, 5개 담배사에 대해 집단소송 대표 3명에게 1천2백70만달러 배상 평결

▶2000년 7월〓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순회법원 배심원, 5개 담배회사에 대해 1천4백50억달러의 손해배상금 지급 평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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